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킴칼리의 멕시코 망명정부

Palabras para iniciar. 시작하는 글

멕시코는 망명의 땅이다. 또 누가 길을 잃었을까 이곳에서. 

나는 멕시코에서 길을 잃었고 이후로 영원히 헤멨다. 어느 사막에서 전설의 여성시인을 발견하려고.

 

 28살 봄이 채 되기 전에 멕시코로 떠났고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나는 멕시코에서 자의로 길을 잃었고 이후로 영원히 헤멨다. 나는 길을 잃기 위해 멕시코에 갔다. 그때는 내가 길을 잃기 위해 멕시코에 갔다는 걸 몰랐다. 다시 멕시코에 돌아오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왜 그랬을까, 왜 그렇게 살았을까 왜 그렇게 살아야만 했을까 한국에서. 서른 살이 되어갈 무렵에 한국에 돌아갔고 3년을 그렇게 살았다. 모든 것들은 완전했고 나는 여전히 젊었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었으며 그 시간들은 내 안에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지만 다시 멕시코에 돌아오고 나서야 알았다. 그 모든 것들은 젖어 있었고 살아 있었지만 나는 내 재를 밟고 서 있었다. 나는 재가 되어서 한국에 돌아갔고 내가 밟고 서 있을 수 있는 건 내 재뿐이었다는 걸.

 


 멕시코는 망명의 땅이다. 또 누가 길을 잃었을까 이곳에서.

볼라뇨, 트로츠키, 마리아, 루이스 세풀베다.

그때는 멕시코가 망명의 땅이라는 걸 몰랐다. 그러나 내가 쫓겨 간다는 것, 버리고 간다는 것, 내팽개치고 간다는 것, 그래서 내가 한번 버렸던 것들에게 돌아가야 했을 때 내가 버림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위에 언급한 망명군단들은 각자 멕시코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쳤는데 나 역시도 멕시코에 처음 도착했을 때에는 종종 글을 쓰곤 했다. 모든 게 놀라웠다. 내가 멕시코에 대해서 기대했던 것들, 멕시코에서 목격하리라고 기대했던 것들이 전혀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는 게 놀라웠고 그런 것들을 적어가곤 했다. 그런 원고들을 모아놓기도 했다. 언젠가 책을 쓴다거나, 내 글들을 모아서 뭔가를 한다거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아는 기자분께 그런 원고들을 보낸 적이 있다. 이런 글을 가지고 뭘 할까요. 그 분은 출판사 편집자에게 글을 보여줬고 그의 코멘트를 그대로 나에게 보내줬다. 긴 글이었으나 요지는 간명했고 나는 그가 옳다고 생각했다. 그가 하는 말에 나도 동의했다. 그런 내용이었다. 이 글을 쓴 사람은.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이며. 차분하고 성실하게 경험을 묘사하는 글쓰기가 되는 친구입니다. 그러나 책을 낸다는 것은 누구에게, 무엇을 보여줄 것이냐가 중요한 문제라고. 누구에게 팔 것이며 무엇으로 팔 것이냐의 문제라고.


 이후로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내 생각은 바뀌어 갔다. 그렇다면, 나는 책을 쓰지 않을 것이다. 누구에게 팔기 위해 타겟팅이 중요하고 독자를 의식한 글쓰기가 중요하다면 나는 내 글에 고료를 책정하지 않을 것이다. 내 밥은 내가 벌어서 먹을 것이고 내 글에 대한 값은 내가 지불할 것이다. 어느 누구도 함부로 내 이름값을 들먹일 수 없도록, 함부로 내 글에 값을 매길 수 없도록. 내 글은 독자를 위한 글이 아니라 나를 위한 글이 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건 스물두 살 때 문창과에 입학했던 이유와 같다. 그때 썼던 모든 글들은 내가 지불한 글, 내가 지불한 시간이었다. 사람 참 안 변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달았다. 타겟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면 형식마저도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형식을 파괴하는 것이 거장들의 특권이라면 거장 아닌 이들, 거장 되기를 거부한 이들의 허가 없는 형식파괴야 말로 진정 의미 있는 작업 아닌가? 나는 멕시코에 관한 여행기를 쓰지 않을 것이다. 당최 내 멕시코 여행이야말로 시작부터 형식 파괴였다. 어딘가로 떠나고, 도착한 다음날 결심한다. 난 여기서 살 거야. 돌아가지 않을 거야. 그렇게 여행은 끝났다. 여행에 관한 글이라고 범위를 짓는 순간 우리의 글쓰기는 뻗어나갈 자리를 잃는다. 여행에 관한 글은 결국 모든 것에 관한 글이다. 여행에서 일어난 일들, 여행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했던 일들은 모든 것이며 아무것도 아니다. 모든 이야기는 집을 떠남과 함께 시작된다. 여행, 방랑, 길 잃음, 고향과 부모와 남친과 그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으로부터 모든 영웅담과 서사시가 시작된다.


 이곳은 맵 퇴사자들의 블로그이다. (라고 나는 들었다.)

퇴사 때 나는, 사실 아무 계획도 없었으면서, 멕시코에 돌아가야 한다고. 여기선 더 이상 만날 남자도 마실 맥주도 없다고 퇴사 사유를 밝혔다. 울었던 것 같다. 그 전날도 남자 만나고 맥주 마셨는데도 입에서는 그 말이 나왔다. 게다가 그건 이미 한번 일어난 일이었다. 28살, 봄이 되기 전의 추웠던 파주 출판단지에서도 나는 더 이상 일하고 싶지 않다고, 멕시코에 가야겠다고. 여기선 더 이상 만날 남자도 마실 맥주도 없다고 그렇게 말했었다, 울면서.





 인생의 시간은 반복된다. 멕시코는 내게 모든 마법적인 것, 신적인 것, 그리고 신적이고 마법적인 것들의 현현을 상징했다. 시간의 반복은 멕시코에서 더욱 극명해진다. 나는 언제나 어떤 길로 멕시코에 갈까 길을 찾고 또 찾았다. 카페에서, 학교에서 일하며 돈을 모았고 몇 권의 책을 읽었다. 멕시코에 도착한 스페인 남자들이 성병을 옮겨 많은 원주민들이 죽었고 그 땅에 아프리카 사람들이 정착하게 되고 춤을 추었고 그 춤과 음악이 세상으로 퍼져나간 이야기, 어느 마야인 여자가 아즈텍어를 할 줄 알았고 스페인 남자로부터 재빨리 스페인어를 배워 아즈텍을 멸망시키고 버림받은 이야기, 그러나 그 스페인 남자들도 결국에는 그 열기 속에서 길을 잃고, 이국의 꿈을 잊지 못하고, 그들 또한 고향에서 버림받거나 혹은 정글 속으로, 혼자만의 왕국 속으로 사라져 간 이야기들.

 그러나 나는 결국 멕시코에 가는 길, 돌아가는 길을 찾지 못하고 포기했다. 남자친구는 가지 말라고, 자기랑 결혼해야 한다고 말했고(이 부분은 정확히 세 번 반복되었다) 나는 혹독한 월급을 견디면서, 재가 되어버린 열정을 파먹으면서 일했다. 이렇게 죽는구나, 내가 아니라 남을 위해 일하면서, 남의 아이들을 돌보면서, 그러나 나한테도 아기가 있었다, 단 한 단어로도 입밖에 내지 않았지만. 나는 멕시코에 갔다 왔기 때문에 이방인이 된 것일까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멕시코가 가고 싶었을까.

 

 결국 어떤 궤도를 돌고 돌아 나는 다시 멕시코에 도착했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처음 발 디딘 멕시코 땅은 소노라였다.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뜨겁고 간결한 사막의 공기, 선인장, 시골 분교만한 공항과 옥소(멕시코 CU)가 있었고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키가 큰 벽안의 멕시코인들, 북부의 멕시코인들이 있었다. 그곳에서 비행기를 타고 코르테스 해안을 지나 선인장, 로드러너, 쏘필로떼와 벌새들이 있는 바하 캘리포니아 남부 북단의 이상한 마을에 도착했다. 나는 내가 소노라의 사막을 보게 되리라고, 바하 캘리포니아, 백인들의 휴양지도 아닌 탄광마을의 바하 캘리포니아를 보게 되리라고 상상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나는 어느 날 기약도 없이 그곳에 도착했고 드디어 내 인생에 내가 몰랐던 일, 기대하지도 못했던 일, 상상도 해 본적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구체적인 부분이 예상을 벗어났을 뿐이지 큰 부분에서 결국 인생은 예정된 대로, 이전에 그러했던 대로 되어가고 있었다. 시간은 반복되고 있었다. 나는 예전에 봐왔던 것들을 다시 보았으며 이미 일어났던 일들이 다시 일어난다는 것을 알았다. 언제나 여행의 초반에는 미친놈들을 대량으로 만난다는 것, 한국 남자들은 너를 유린하고 한국 여자들은 너를 철없는 아가씨 취급한다는 것, 약간의 강도질을 당하고 나면 이후가 안전하다는 것, 나는 외로워지고, 끊임없이 집에 놓고 온 고양이를 그리워하며 그녀를 잃는 악몽에 시달리고 혹은 양키들에게 살해당하는 악몽을 꾸고 처음에는 동료라고 생각했던 배신자를 만나고 이 낯선 땅을 사랑하고자, 받아들이고자, 처음부터 끝까지 이해하고자 모든 열정과 투지를 불태우지만 결국 네가 이방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길에서 어떤 남자를 만나고 그의 이방인됨에 반하고 그를 사랑하고 싶어 하지만 다음날 아침이면 그 남자는 떠나고 삼년이나 사년 후에 또 다시 길에서, 그 남자와 똑같은 남자를 만난다. 같은 얼굴로, 같은 목소리로, 같은 이야기를 하는 남자를.

 

 나는 또다시 오래된 책 몇 권을 가방에 넣어오고 좀처럼 그 책들을 마저 읽지 않는다. 볼라뇨의 책이 두 권 있다. 종종 여행지에서 근사해 보이라고 들고 다니는 500페이지가 넘는 하드커버의 책 두 권을. 1부의 제목은 ‘멕시코에서 길을 잃은 멕시코인들’ 이다. 내장사실주의자 시인들은 많은 사람들이 헤메고 다녔고 나도 헤메고 다녔던 멕시코시티의 밤거리를 헤멘다. 부까렐리에서부터 센트로 히스토리코, 카페 타쿠바와 로마, 콘데사를 지나 코요아칸까지. 2부에서 그들은 세상을 헤메이기 시작하는데 3부가 되면 다시 멕시코로 돌아오는 것 같다. 그들은 전설의 여성시인을 찾아다니고 있다. 3부의 제목은 ‘소노라의 사막들’ 이다. 그곳에서 전설의 여성시인을 찾는 이야기인 걸까. 나는 아직도 이 책을 다 못 읽었다. 우리 모두가, 있었다고는 하나 아무도 보지 못했고 아무도 그의 시를 읽은 적이 없는 그 전설의 여성시인을 찾아 이렇게 세상을 헤메이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