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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의 구릿빛 Episode

#01. 울트라 캡숑 다이나믹 - 볼리비아 나이트 버스

블루의 구리 빛 Episode

 

핑크빛 여행을 꿈꾸던 블루에게 쌓여 간 구리 빛 에피소드.

그 어설프고 고되고 불편했던 여행의 기억으로 인해 나는 결국 여행에 빠져들었다.

 

나에게 내 안의 여행이야기는 낡고 바랜 에피소드일 뿐이지만 가만히 닦다보면 슬며시 빛을 발한다.

그래 너는 원래 그렇게 반짝이고 있었지!  다시금 짜릿할 만큼,  다시금 시큰할 만큼!

 

 

   한때, 나에게 남미는 동경의 여행지였다.

그리고 한 참을 잊고 있었다.

신비로운 비밀에 둘러싸인 듯한 마추픽추, 파란 하늘과 하얀 사막이 맞닿은 우유니...

 

                                                                                                                         

                                                                                                     아구아갈리엔떼 - 마추픽추

 

                                                                                                                                        

                                                                                                                                우유니 소금사막

 

어느 날 지인에게 온 전화 한 통.

“너 남미배낭인솔 안 해볼래?”

 

나는 직장에 사표를 내고(결국 휴직이 됐지만) 10일 뒤에 리마행 비행기를 탔다.

스페인어는 10까지 셀 줄 알았고 배고파요, 방, 화장실, 물 정도의 단어를 알고 있었다.

35일 일정의 여행을 인솔하기 위해 페루의 리마에서 아르헨티나 이과수까지 빛의 속도로 답사를 마쳤고

손님들을 맞이하러 리마로 다시 올라왔으며 이따금 얼토당토 않는 스페인어를 섞어쓰며

35일간의 남미여행인솔을 무사히 마쳤다. 2달간 탄 야간버스는 15회 였다.

 

올레!  다음 팀은 한 달 뒤에나 온다. 수면부족과 과로로 쓰러질 것 같던 나에게 한 달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나는 브라질의 습지 판타날 투어에 참가하고 브라질 이곳저곳을 돌며 열흘 만에 여행경비를 탕진했다.

땅이 넓어 이동시간이 긴 브라질은 이곳저곳을 많이 보기엔 고단했고 나는 지쳐가고 있었다.

 

“아무것도 안하는 게 소원이야! 이제 한 곳에 일주일쯤 머물며 휴식이란 걸 해보자.”

그러기 위해서는 빨리 브라질을 떠나야 했다. 이유는 하나! 가난한 여행자에게 브라질의 물가는 너무 높았다.

나의 선택은 육로를 통해 물가가 저렴한 볼리비아로 넘어가는 거였는데 나라의 대부분이 3천 미터 이상의

고원으로 이루어진 볼리비아의 코스 중에서도 이 코스가 듣자 하니 나름 죽음을 코스다.

 

나의 목표는 '평화'라는 의미를 가진 도시 라파스!

국경도시에서 22시간의 산타크루즈행,

또 20시간의 수크레행을 거쳐 마지막으로 12시간의 버스를 감내하면 드디어 라파스에 도착하게 되는 거다.

무지는 사람을 용감하게 만들곤 한다. 하지만 난 이미 수도 없이 현지인들로부터 그 버스는 타지 말지 그래-

라는 충고를 들었기에 용감 대신 체념이 나의 정서를 지배하고 있었다.

 

듣던 대로 내가 타고 갈 버스는 이제까지 열악했던 어떤 버스보다 특별해 보였다.

범퍼는 떨어져 나간 지 족히 몇 년쯤은 된 것 같았고 버스에는 적당한 틈도 보였으며 달구어진 버스의 천장에

서는 열기 때문에 아지랑이가 피어 오르고 있었다. 3시간이나 늦게 온 버스는 사람들이 타기 전에 도대체

사람은 어디에 타? 라고 생각할 만큼 도저히 싣기 어려울 만큼의 짐을 먼저 실어야 했다.

싣고 또 싣고 ‘세상에 이런 일이’ 혹은 ‘생활의 달인’ 이라도 촬영하는 듯 짐은 기술적으로 빈틈없이 무게중심

을 맞추며 짐칸을 채우고 버스의 천장을 채웠다.

족히 30분은 넘게 걸렸고 나는 그 모든 순간을 진심으로 감탄하며 지켜보았다.

모든 짐이 실렸을 때 나는 혼자 열렬한 박수를 보낼 뻔 했다.

 

버스의 내부는 심플했다.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조명도 없고 에어컨이나 커튼은 물론이고 짐을 올릴 선반도

없고 창문을 열고 닫을 손잡이도 없었다. 그나마 의자가 남아있다는 것이 다행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낯선 이방인에게 창밖으로 살 수 있는 맛있는 거리음식을 알려주는 아줌마, 창문, 바람,

고양이 같은 스페인단어를 알려주는 아저씨가 있어 나는 외롭지 않았다.

 

22시간으로 예정된 버스는 28시간이 지나서야 비포장 도로에 구불거리는 산길을 달려 나를 목적지에

내려놓았다. 기침을 하면 목에서 흙먼지가 튀어 나올 거 같았다. (아니 나왔다.) 하지만 나는 겨우 하루를 쉬고

다시 야간버스 티켓을 끊었다. 독한 것!

 

다음 야간버스는 훨씬 나았다.

낫다고 하는 것이 무의미하지만 그래 보였고 그 사실에 만족하기로 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복도를 꽉 채운

짐과 사람들 사이에서 길에서 조차 조명하나 없는 비포장 밤길을 달리고 있었다.

나는 지독하게 아름다운 쏟아지는 별보기에 지쳤고 든 것도 없으면서 금 쪽 같이 틀어쥐고 놓지않던 나의

작은 배낭을 더 이상 부둥켜안고 싶지 않았다.

 

 ‘이노무 짐, 누가 가져 갈 테면 가져가라!'

 이렇게 가다간 인내심으로 까맣게 타서 재가 될지 몰라...‘ 그리고 나는 배낭여행자로 남미에서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말았다. 

 

나는 우선 신발을 벗고 의자 위로 부어 있는 다리를 올렸다. 그리고 신발위에 소지품이 든 비닐봉지와 작은

배낭을 내려놓았다. 남미의 허름한 밤 버스에서는 절대로 짐을 자신의 몸에서 떼어 놓으면 안된다는 여행자의

규율을 깨고!

 

   잠깐 잠이 들었을까? 햇살이 나의 고단한 잠을 깨운다.

   잠에서 깼지만 겨우 눈 하나 뜨는 것도 힘들었다. 눈을 감은체로 생각이 피곤의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음? 발에... 아무것도 걸리는 것이 없어?’ 눈이 번쩍 뜨였다.

    날렵하게 발밑을 바라보았다. 역시... 아무 것도 없다.

   '아! 드디어 이렇게 끝이 난건가? 나의 남미여행! 나는 고개를 처박고 나의 가방, 나의 소지품을 찾는다.

    양말만 신은 채로 ... 그래 나는 이제 신발도 없다.

    버스에서 빈 손으로 신발도 없이 내리는 나의 모습을 생각하자 진심으로 불쌍했다.

    거칠어진 손, 그을린 얼굴, 움푹 들어 간 볼따구,

    나의 초췌한 몰골은 내가 잠시 연민을 품었던 볼리비아 인디오의 모습과 꼭 닮아 있었다.

 

    내가 몸도 마음도 지쳐 바닥에 처박고 있던 고개를 들었을 때

    나의 옆에 앉아있던 볼리비아 아주머니가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왜 그러냐고 물었다.

    나는 양말만 신은 발을 보여주며 “모든 것이 없다!”고 불쌍하게 그리고 어설프게 이야기 했다.

 

   아주머니는 연민의 눈빛을 보내고는 벌떡 일어나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외쳤다.

   그러자 복도에 앉은 사람 의자에 앉은 사람 할 것 없이 움찔움찔 움직였고 내가 그랬던 것처럼 고개를

   바닥에  붙이고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40인승 버스에 타고 있던 80명의 탑승객은 보물찾기 놀이라도 하는 듯 적극적으로 주위를 살폈다.

  “여기! 이거?” 나의 비닐 봉지가 제일 먼저 나왔다.

   그리고 봇물이 터지듯 여기저기서 “여기! 여기! 하면서 나의 가방이며 운동화며 비닐 봉지에서 빠져나온

   겉 옷, 소지품 등을 들어 올렸다. 깔깔깔 사람들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나의 소중한 운동화 한 짝.

  서서히 웃음이 잦아들 무렵...

   그때!

   아! 누군가 승리에 찬 환희의 표정으로 나의 운동화를 번쩍 들어 올렸주었다! 

   모든 사람이 환호를 부르며 웃어 제꼈다.

 

   간의 멈춤! 그 숨을 멈추는 찰라!

  고마운 그와 눈이 마주친 순간, 그의 얼굴은 “내가 찾았어”라고 소리치는 것 처럼 보였다.

   키 157, 가무잡잡한 피부, 마른체형의 그가 나는 잘생겼다고 진심으로 느꼈다.

   우리의 거리가 가까웠다면 나는 기꺼이 뜨거운 포옹을 날렸으리라!

 

   옆 자리 아주머니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모든 물건을 내게 안겨 주었다.

   나는 얼굴이 조금 붉어져 있었지만 신발을 양손에 받아들고 벌떡 일어나 밝게 웃으며

   “그라시아스 아미고스 (감사합니다. 친구들)”를 외쳤다.

 

  버스는 웃음의 도가니였다.

 

  

   역시 여행은 삶과 닮아있다.

   나는 그때 하얀 백색의 도시 수크레에서 무엇을 했었는지 목표였던 라파스에서 무엇을 즐겼는지에 대한

   기억은 희미하다.

   나의 기억엔 그저 그 험난했던 버스와 그곳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있던 사람들만이 섬세하게 각인되어 있다.

   가난한 여행자는 여행의 즐거움에 민감해 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것에도 즐거워지고 행복해져야 한다.

   그 작은 순간들을 놓치는 것은 참으로 아쉬운 일이 아닌가?

 

   나는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먼지가 자욱한 택시에 올라 론니플래닛에 나온 숙소 중 하나를 찍어

   그리 가자고 했다. 이른 아침 시간이었지만 체크인이 허락되었고 여러 명이 함께 쓰는 도미토리도 있었지만

   나는 하나 남았다는 싱글룸에 기꺼이 11달러를 지불했다.

  브라질의 12인 도미토리의 침대하나 값도 되지 않았다.

 

   기다란 방에 겨우 싱글침대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 방의 첫인상은 어쩐지 죄수의 독방 같다 싶었지만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냥 그 정도가 딱 좋았다.

   나는 미지근한 물에 덜덜 떨며 샤워를 마치고 드디어 침대에 눕는다고 환호성을 지르며 침대로 뛰어 들었다.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테다… 라고 다짐하면서~!

   다행히 하얀 시트가 빠닥빠닥 깨끗했다. 나의 입가에 살포시 미소가 떠올랐다.

 

   여행의 맛이 참으로 짭쪼름하다.

 

 

 

                                            ******** 본 글은 여행학교 로드스꼴라 3기의 졸업잡지에 썼던 글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 남미여행에서 만난 몇 장의 장면 ] 식초가 예전에 편집해준 사진입니다.

 

  

                                                                                                                               페루 - 잉카길

 

 

                                                                                                                                  뿌노 축제

 

 

                                                                                                                               페루 - 살리나스

 

 

                                                                                                                   엘깔라파데 - 모레노 빙하 

 

 

                                                                                                 이구아수(아르헨티나) - 악마의 목구멍

 

 

                                                                                                                                  우유니 사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