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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유의 가만히 #여행

가만히 국내여행#1_통영_남해의 봄날, 봄날의 집


지유의 가만히 #여행은  

여행을 통해서 나의 일상이 머무는 공간과 시간을 다시 확인하려 합니다. 개인적인 여행, 사람들과 함께했던 여행의 경험들을 글을 통해 나누려합니다. 여행은 새로운 즐거움과 관계들로 시작되고, 인생이라는 여행길을 함께하는 오래된 친구와의 만남과 익숙한 공간으로 끝이 나는 듯 합니다. 그러나 또다시 새로움을 좇으며 인생의 바퀴자국을 세상 여기저기에 남기고 있는 지금이 가장 행복합니다.  


(트래블러스맵 이하 맵) 퇴사 후 한달이 지났다. 한 달 동안 거실 소파와 한 몸이 되어 온 종일 티비만 보았다. 아침 막장드라마부터 심야방송까지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일을 빼고는 아무 생각없이 티비만 본다. 회사를 다닐 때엔 회사만 안 다니면 아침엔 요가, 오전엔 영어공부, 오후엔 우쿨렐레, 주말엔 테니스 등 온전히 내가 하고싶고 배우고 싶은 것들로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아무것도 하고싶지않고, 배우고 싶은 것도 없고, 목표가 없다. 뭘 해야할지 몰라 갈 길 잃은 사람처럼 머리속이 텅 비어버린 것 같다. 일상의 무료함에 짓눌리다 이제는 바닥 밑까지 박혀버린 나를 뿌리채 뽑아줄 구원투수가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가방을 싸고 떠날 채비를 한다.  바닷내음이 바람에 묻어나는 아름다운 도시 통영으로. 


[사진1_충무교에서 바라본 통영 앞바다]

[남해의 봄날] 은 로컬 스토리텔링을 중심으로 일과 삶의 새로운 대안을 책과 다양한 미디어로 소통하는 통영의 작은 출판사이다. 지역의 예술인들을 널리 알리기 위해 동네 건축가와 의기투합하여 아트하우스 (게스트하우스) '봄날의 집'을 기획하였다. 남해의 봄날 출판사를 알게 된 것도 사실 아트하우스 봄날의 집을 통해서였다. 여행 자체가 목적인 사람들이 많을테지만 나처럼 하룻밤 묵어가는 숙소, 스토리가 있는 공간을 방문하는 것이 목적인 나같은 사람도 있다.  국내외 알짜배기 숙소 정보만 모아 소개하는  '스테이폴리오(www.stayfolio.com)'에 소개된 봄날의 집 을 보고서 통영에 가면 꼭 이 곳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던 터이다.  그래서 무작정 봄날의 집에 연락해서 내일 비어있는 방으로 예약을 했는데, 당장 내일 묵을 방을 오늘 예약하니 운영하는 측에서도 살짝 당황해하는 것 같았지만 다행히 방을 예약할 수 있었다. 국내여행이 좋은 건 바로 지금 당장이라도 떠날 수 있기 때문일까? 충동적으로 떠나는 여행이 얼마나 큰 해방감과 야릇한 즐거움을 주는지 해 본 사람만 알 것이다.  


[사진2_봄날의 집 게스트하우스 내부]

통영하면 윤이상, 통영국제음악제, 동피랑 벽화마을? 정도로만 알고 있었기에 지역 예술인을 알리기 위해 게스트하우스 봄날의 집을 만들었다는 소개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조그만 바닷가 마을에 예술인들이 얼마나 많길래(혹은 얼마나 대단하길래) 숙소까지 만들어서 소개를 하려는걸까?  게스트하우스와 바로 붙어있는 남해의 봄날 서점에서 구입한 장인지도 (Craftman's Way) 를 펼쳐보고서 난 나의 무지함에 부끄러워하면서도 보물지도를 손에 든 것 마냥 감탄에 감탄을 연발했다. 통영 시내에만 박경리, 김춘수, 유치환 등 한국 근현대문학의 한 획을 그었던 작가를 비롯한 수많은 예술인과 장인들의 생가와 시비, 기념관 등이 무려 스물 곳은 족히 넘었고 통영의 무형 문화재 장인의 공방도 꽤나 모여있다. 통영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을 관장하는 지휘 본부를 설치한 곳이다. 이는 훗날 통제영으로 자리 잡았고, 통제영 산하에 군수품 조다을 위한 공방이 만들어져 전국의 솜씨 좋은 장인들이 통영에 모여들게 되었다. 이후 통영 12공방의 체계를 갖추며 조선시대 최고 공예품을 만들어내는 명품 브랜드로 자리매김했고 걸출한 장인들을 배출해냈다. 그래서인지 게스트하우스 봄날의 집은 문화예술의 보고 통영에서 나고자란 예술인들의 삶과 그 작품들을 각 객실에서 직접 만나고 체험할 수 있는 아트하우스이다.  총 4개의 객실은 각기 작가의 방, 화가의 방, 장인의 방 1, 장인의 방 2 라는 이름을 갖고있다. 보통 다른 컨셉이라고 하면 인테리어 컨셉이나 컬러가 다른 정도인데 봄날의 집 객실은 통영 출신의 작가와 화가 그리고 장인의 작품으로 방이 꾸며져있고 나전 장인이 직접 만든 문패와 가구 등을 직접 사용해 볼 수 있다. 전 객실의 침구류는 두툼한 목화 솜과 통영 전통 누비로 만들어서 깊은 단잠을 자기에 안성맞춤이다. 


[사진3_장인의 다락방2 객실 내부]

[사진4_장인의 다락방2의 누빔이불]

[사진5_장인의 다락방2에 손님이 직접 사용해볼 수 있는 나전칠기 찻상]

[사진6_남해의 봄날 기획팀과 나전칠기 장인이 함께 기획하여 만든 벽걸이용 거울]

[사진7_사진 속의 누비 파우치는 손님용 헤어드라이기를 담아두는 용도로 쓰인다]

장인의 방에서 단 하룻밤 묵었지만 그 옛날 친정 엄마가 혹은 시어머니가 시집올 때 해왔던 촌스러운듯 화려한 나전칠기의 이미지 대신 단순하면서도 한층 깊은 멋이 우러나는 예술품이 내 마음에 들어왔다지역의 전통과 예술품 그 자체도 아름답지만 이를 소개하고자하는 좋은 의도가 직접 이용해보고 구매할 수 있는 아트하우스로 이어져서 더 아름다운 것 같다. 숙소의 기능을 넘어서 통영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알고 보존하고, 가장 잘 알릴 수 있는 방법까지 고민했을 기획단의 노력과 세심함이 충분히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지난 여름에는 통영길문화연대와 함께 장인의 길을 함께 걷고 전통공예교육관을 방문하는 길여행을 진행했다고 하는데 참가자들의 반응이 아주 좋았다고 한다. 아침 조식은 아트하우스에서 도보로 5분 정도 떨어져있는 동네 식당에서 생선구이 정식을 제공한다. 식당에서 생선구이 정식을 1만원에 판매하고 있는데, 게스트하우스 손님의 숙박비에 조식비용이 포함되어 있고 숙소측에서는 1인당 1만원을 식당측에 그대로 전달하고 있다. 나 스스로도 공정여행의 본질을 잊고있던 즈음 공정여행이라는 거창한 수식어 하나 없이도 그 취지를 제대로 살리고 있는 곳을 만나니 반갑지 않을 수 없다.   

맵을 떠났지만 여전히 난 좋은 여행을 꿈꾼다. 좋은 여행을 기획하고 싶고 소개하고 싶다. 공정여행사에서 일하면서 참된 여행의 본질을 잊어가고 있던 내게 여행기획자로서의 참된 자세와 앞으로 걸어갈 방향을 세울 수 있는 짧지만 귀한 시간이 되었다. 


(TIP) 봄날의 집 게스트하우스를 소개하는 팜플렛을 꼭 먼저 챙기세요. 숙소가 있는 봉수골 맛집 지도가 수채화 일러스트와 함께 소개되어있다. 새벽 4시반부터 문을 여는 동네 목욕탕, 30년이 넘은 로얄장(여관), 무인카페, 찜 전문집 등등 숙소 근처만 둘러봐도 아기자기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자료 참조] 

장인지도 / 남해의 봄날 저

봄날의 집 홈페이지 http://www.namhaebomnal.com/artho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