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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유의 가만히 #여행

가만히 티베트 여행 #2 그곳은 사천성의 어딘가, 이름없는 온천

지유의 가만히 #여행은  

여행을 통해서 나의 일상이 머무는 공간과 시간을 다시 확인하려 합니다. 개인적인 여행, 사람들과 함께했던 여행의 경험들을 글을 통해 나누려합니다. 여행은 새로운 즐거움과 관계들로 시작되고, 인생이라는 여행길을 함께하는 오래된 친구와의 만남과 익숙한 공간으로 끝이 나는 듯 합니다. 그러나 또다시 새로움을 좇으며 인생의 바퀴자국을 세상 여기저기에 남기고 있는 지금이 가장 행복합니다.  


티베트여행 #2

그곳은 사천성의 어딘가, 이름없는 온천


 감숙성 랑무쓰에서 하루를 보내고 길을 나섰다. 오늘부터는 지우저에서 온 기사님들이 여행의 마지막까지 운전을 해주신다. 총 18명의 인원이 함께하는 여행이어서 인솔자 Y는 3대의 승합차를 준비했다. 티베트어로 된 이름이 낯설어 처음부터 기사님의 이름을 잘 외운건 아니었다. 아니, 처음엔 이름을 모른채 우리가 붙인 별명으로 '(최)민식이 형', '잘생긴 아저씨', '이승철 아저씨'로 불렀고, 매일 매일 제비뽑기로 탑승할 차를 정했다. 난  매일 민식이 형 차에 타길 바랬다. 목받침이 없어서 잠을 잘 때 아주 불편했지만, 이승철 아저씨보다 느긋하게 운전했고 운전하는 내내 한국어에 호기심을 갖고 수시로 농담을 치셨다. 민식이 형의 이름은 '당쯔'. 당쯔는 차를 운전하는 동안 불경 테잎을 틀어놓고 불경을 따라 중얼거리셨다. 블루투스를 가져온 Y는 힙합을 (조수석과 운전석에 앉은 사람들의 졸음방지를 위한 이유가 30%) 틀었고, 노래가사를 따라부르며 흥을 냈다. 간혹 불경과 힙합의 볼륨이 점점 높아져 충돌하는 지점에 다다르면 당쯔가 Y를 보며 소리내어 웃었다. 나는 졸렸고, 고산 반응에 두통이 심해서 당쯔의 불경이 자장가처럼 듣기 좋았다.


[이름없는 온천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도 사람들이 사는 집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집 뒤로 유황물이 나오는 노천탕이 있다.]

 랑무쓰에서 한 시간 반 쯤 지났을까. 당쯔가 모는 승합차가 사천성의 어딘가에 도착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루얼까이현 홍위엔향으로 생각하는데 정확한 것은 아니다. 도착한 이 곳은 이름없는 온천. 온천이 아주 드물어서일까, 금수탕이나 옥수탕같은 정겨운 이름을 붙여 구분할 필요가 없나보다 라고 나는 생각했다. 사전 안내를 받을 때에 들은 정보로는 남녀 구분된 노천탕이고 외국인은 찾아볼 수 없는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동네목욕탕이라고 했다. 사물함이 없으니 작은 가방에 미리 수건을 챙겨야하고 비누나 샴푸를 일체 쓸 수 없다고 했다. 물에 몸을 담그고 데우고 나와서 수건으로 닦으면 끝. 간편해서 좋구나, 그런데 만난지 일주일도 안 된 사람들과 알몸으로 탕에 들어가야하다니, 걱정이 앞섰다. 현지인들은 알몸으로 들어가는지, 속옷 어쩌면 수영복을 입는지 이것저것 우려되는 걸 물어봤는데 돌아온 대답도 간단하다. 다 벗고 들어가는 사람 반, 팬티만 입고 들어가는 사람 반이라고 지난 여행을 함께 했었던 여성 여행자가 알려줬다고 한다. 물론, 탕에 들어서면서부터 우리는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혹은 지난번 여행자의 팁은 깊숙이 접어두고) 속옷을 입어야하는지 어떨지, 입는다면 어디까지 입어야하는지 단박에 알아차렸다.


[건물 뒤로 수증기가 나오는 곳이 바로 노천탕이 있는 곳이다. 맨살과 맨살이 부대끼며 몸을 데우던 그 곳]

 여탕과 남탕 출입구에서 서성이다 남자가 나오는 쪽이 남탕인줄 알아차리고는 자연히 여탕으로 들어갔다. 문은 없었고, 천 가림막을 헤치고 들어가는데 순간 흠칫. 탕 속에는 못해도 오륙십명의 사람들이 있었고, 수많은 호기심어린 눈들이 나의 머리부터 멋쩍은 표정, 운동화까지 구석구석 훑었다. 반대로 나에게도 이 장면은 진귀한 풍경이었다. 우선 생각했던 것보다 사람이 많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욕탕 안에 빈 곳이 안 보일 정도로 꽉 차도록 앉아있었다. 파이프가 연결된 탕 속의 여인들이 모두 속옷을 입은채로 물 속에 앉아있었고, 다채로운 색깔의 장신구를 몇 개씩이나 걸고 (심지어 어떤이는 털모자를 쓴채로) 있었다. 긴 머리를 양갈래로 땋은 여인, 두 볼이 발개진 아주머니들, 나오는 웃음을 이리저리 막아보며 우리의 존재를 신기해하는 아이들. 이럴 땐 탕에 빨리 들어가는게 상책이다 싶어 옷을 놔둘만한 공간을 살피면서 동시에 탕에 있는 사람들을 엿보았다. 여인들 대부분이 끈나시나 반팔 티셔츠에 팬티를 입고 있었고 나도 속옷을 입고 들어가면 되겠다는 어떤 안도감이 생겼다. 겨울이다 보니 외투에 니트, 유니클로 히트텍까지 벗어야할 게 많았고 본의아니게 그만큼 물 속의 관중들에게 구경거리를 조금 더 제공한 셈이다. 


 탕은 2개였다. 미지근한 물과 뜨끈한 물로 구분되었다. 한국의 대중 목욕탕과 달리 땅 위에 욕조를 만든게 아니라 땅을 파서 그 안에 나무를 깔고 물을 채운 것 같았다. 바닥을 나무로 깔아서인지 몸이 푹 잠기지 않았고, 앉았을 때 가슴 중간까지 잠기는 정도였다. 우리 일행 10명 모두가 일단 사람이 덜 빽빽한 곳에 들어가 앉았다. 그냥 봐도 물이 깨끗해보이지 않았고 다행히 우리중에는 결벽증이 심한 사람은 없었다. 우리끼리 너무 부끄럽다느니, 사람들이 다 일제히 우리만 보고 있다느니 이런 저런 얘기로 수군거렸고 사람들은 여전히 몸에 물을 적시며, 장신구를 만지며, 세수를 하면서도 우리를 바라보았다. 난 무엇보다 긴 땋은 머리와 다채로운 장신구를 한 아름다운 여인들에 매료되어 사진을 찍고싶은 충동을 억눌러야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우리를 향한 시선 속으로, 내가 바라보는 저 아름다움 속으로 몸을 옮겼다. 


 뜨끈한 물이 역시 좋구나. 거리가 좁혀진만큼 여인들도 따뜻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우리가 앉을 자리를 조금씩 마련해주고 미소를 지었다. 나는 엄마와 함께온 열 둘, 열 셋 정도로 보이는 아이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이는 엄마와 눈빛을 교환하면서 쑥스럽고 신기한지 연신 웃어댔다. 나도 웃으며 한국인에서 왔고 내 이름은 해미라고 알려줬다. 우리 중에 가장 하얀 피부를 가진 은선언니는 할머니들의 손길을 계속 받았다. 고도가 높아 자외선이 강해서 사람들이 대부분 갈색 피부여서 그런지 은선언니의 빛나는 살결이 눈에 띄는게 당연했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우리네 이모할머니, 고모할머니 처럼 친숙하고 정감갔다. 내 뒤쪽에 앉아있던 할머니가 내 등으로 물을 부어주셨다. 1.5L페트병을 사선으로 잘라 윗부분을 바가지로 쓰고 있었다. 페트바가지, 그 속의 온천수, 물을 떠 흘려보내는 따뜻한 손길. 난 감동받고 말았다. 내 마음도 무장해제되었고, 언어가 통하지 않는 이들에게 뭘 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 할머니의 발을 주물러줬다. 티베트 할머니의 발은 두텁고, 거칠었다. 연인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발을 주물러본 적이 있는가. 한 여인의 인생이, 수많은 이야기가 이 발에 담겨있는 마냥, 나는 붓고 굳은 발등과 바닥을 정성스레 꼭꼭 주물러드렸다. 여행내내 긴장했던 마음이 풀어진 나는 그녀의 남은 인생은 이 발처럼 따뜻해지길 마음으로 기도했다. 


[함께 여행한 사람들 중 가장 나이가 어렸던 초등학교 4학년 김찬. 온천욕을 끝내고 만족해하는 모습이다.]

 공정여행을 (상품을 이용하는) 하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현지인과의 만남을 기대하는 듯하다. 나도 몇 번의 인솔을 하면서 여행자들에게 많이 받았던 질문 중 하나가 현지인 집에 가볼 수 있는지 혹은 현지인과 함께하는 식사시간이 있는지 등이었다. 그럴때마다 드는 생각은 불편한 것, 익숙하지 않은 것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가였다. 내가 살던 문화권과는 완전히 다른 문화권에서 현지인들이 먹는 음식을 먹고 현지인들의 문화를 체험하는 것은 나에게 익숙한 것을 버려야하고 불편한 부분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모든 현지 문화체험이나 식사가 불편하거나 입맛에 맞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불편한 상황에서도 마음의 빗장을 열고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경험하고싶은 호기심이 일어난다면 여행이 훨씬 즐겁고 풍성해질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다. 티베트 여행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언제든지 내가 적극적으로 나서면 현지인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중 서로가 가장 가까이에서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온천에서의 시간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작은 호의 하나만으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을 보낸다면 나에게도 그들에게도 소중한 추억이 하나씩 생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