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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초반달곰의 Milktea

시작. 나는 또 거기에 가겠지

식초반달곰(a.k.a 식초)의 Milktea, 奶茶, चाय (밀크티, 나이차, 짜이)는 갔던 곳에 또 가서 발견한 즐거움을 모아놓은 카테고리 입니다. 
사진은 엄청찍어서 많이 보여드릴 자신은 있습니다. 제목에 낚여서 미식여행기라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저는 밀크티와 나이차, 그리고 짜이를 밥보다 더 좋아합니다.


나는 여행갔던 곳을 여러번 간다. 남들은 한두번 가볼까 하는 곳을 가고 또가고, 몇번씩 갔다. 그렇게 일본만 7번(헐ㅋ), 홍콩은 4번, 대만은 두번이나 갔다. 물론 인도는 한번 더 가고싶다. 방콕도 그렇고. 한번으로는 꼼꼼하게 못봤다고 생각해서 몇번씩가서 봐야 여기는 이렇구나 느끼는 것 같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1년에 한번은 비행기를 타자고 마음속으로 다짐했었다. 지금까지는 얼추 잘 지켜지고 있지만 대신 적금통장이라는걸 가져본적이 없게되었다. 있더라도 어느정도 모이면 여행가기 전에 깨는 저금통이었다. 스물일곱 그즈음에같은 회사에서 일하던 어떤 언니는 적금으로 무려 4000만원(맞겠지? 천만원 이상이었음.)을 받는다고 좋아했었다. 부럽다며 한숨쉬고 있을때 그 언니는 나에게 '넌 그만큼 여행하며 여러가지를 보았으니까 그게 적금인거야'라고 말해주었다. 그렇다고 내가 막 지구를 막 몇바퀴씩 돌은건 아니었는데 말이다. 

일을 하면 휴가는 1년에 몰아서 약 일주일 밖에 쓸 수 없었다. 회사를 관두지 않는이상 2주이상 휴가는 꿈이다. 그리고 6시간 이상 비행기를 타면 몸이 아팠다. 오만가지 아픈게 다 몰려왔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여행지는 비행시간이 6시간 이내인 아시아로한정되어졌고, 다행히 아시아에 대한 거부감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유럽보다 더 좋았다.유럽이 가고싶다고 느낀것도 최근이었다.

스무살 무렵부터 디자이너라는 핑계로 영화도 많이보고 미술관도 많이 갔다. 잡지를 정말 많이 봤었는데 지금도 일반 책보다 잡지가더 좋다. 그러면서 신기한 외국잡지들과 아시아 디자인도 많이 보고, 왕가위 영화를 다 봤고 양조위에게 반했다. 아기자기한 일본영화와 경찰과 스파이가 난무하는 홍콩영화도 열심히 봤다. 

그러다가 첫 해외여행으로 홍콩에 갔다. 영국에게 묶여있다가 다시 중국이 되었고, 중국인데 뭔가 서울보다 세련되보였다. 한문과 영어가 섞여있고, 고층건물 사이로 시장과 옛건물들이 있었다. 야경이 기가막혔다. 친구와 어버버하며 4일을 다녔었다. 쇼핑을 마구한건 아닌데 그냥 길을 걸어다니기만 해도 좋았었다. 처음가는 여행이라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뭔가 강렬함이 있었다. 


편의점에서 산 귀여운 딸기우유와 처음보는 모양의 버스를 보고 신기해했었지.


트램은 타는것도 보는것도 좋다.


그 이후로 친구와 두어번, 스물여덟에는 회사를 그만두고 일주일 후 혼자서 홍콩에 갔다. 열흘이나 있는다니까 왜 이렇게 오래있냐며 게스트하우스 주인아저씨가 이상하게 봤다. 일때문에 온거 아니냐며. 쇼핑몰 바이어냐며ㅋ 이런 손님은 드물다며 저녁에 간식도 챙겨주셨다 하하. 나는 잡지를 비롯한 책을 제외하면 쇼핑을 즐겨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맛집에 대한 열정도 없었다. 그래서 왕페이와 양조위가 빨간양말을 신고 걸어다닐듯한 길을 마구 걸어다녔다. 끼니때가 되면 적당히 좋아보이는 식당으로 갔었다. 슈퍼에서 과일을 사먹고(의외로 과일이 싸다. 신기한것도 많더라) 심심하면 밀크티를 마셨다. 미술관과 박물관을 구경하고, 멋있는 건물은 다 들어갔다. 밤마다 스타의 거리에서 야경을 봤다. 시골 타이오에 갔을때는 핑크돌고래보다 수상가옥들과 평화로운 풍경에 반했다. 골목에서 사람들에게 이쁨받던 냥이들까지 잊을수 없다. 그리고 좋은 인연을 만나서 빅토리아 피크에서 별들과 함께 카페데코에서 밥도 먹고. 으흐흥.


타이오에서 내가 느낀 평화로움이 다 들어가 있는 장면.


해보고 싶었던 완차이 뒷길 걸어다는 중.


그리고 5년정도가 지났다. 그동안 갈 기회가 있었는데 이상하게 못갔다. 비용에 은근 부담이 있어서 가까운 일본이나 타이완에 갔었고, 작년에는 새로운곳에 도전하겠다며 태국 방콕에 가서 못갔다. 정말 너무나도 가고 싶었는데.
요새는 좋은 세상이라 저렴한 비행기표도 많아졌지만 왠지 더욱 멀어졌다. 조금씩 오르던 환율은 결국 1HKD = 150원으로 거의 굳어졌고, 땅값이 세계에서 제일 비싼 만큼 체류비용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었다. 정말 청킹이나 미라도맨션에서 잠을 자야 하는건가, 숙소는 구할 수 있을지 매번 고민했다.

홍콩은 그사이 많이 변했다. 항상 공사중이었던 센트럴 피어에는 결국 대관람차가 생겼다. 뭔가 어울리는것 같은데 이상해보였다. 애정하는 청핀서점이 들어있는 하이산 플레이스가 코즈웨이베이에 들어서고, 침사추이에는 빽빽하게 빈 공간이 없이 건물들이 박혀있다. MTR은 새로운 역을 개통하고, 할리우드 로드에는 멋있는 건 다 모아놓은 pmq가 생겼다. icc가 홍콩에서 제일 높은건물이니 초고급호텔이 있네 어쩌구해도 ifc보다 못생겨서 싫다. 그리고 저 멀리 신계에 있는 어떤 작은 마을은 관광청에서 열심히 홍보를 시작했다. 

작년 가을 센트럴의 Connaught Road와 몽콕은 무지갯빛 우산과 텐트들, 온전한 홍콩을 지키고 싶은사람들로 가득 찼었다. 매년 중국국경절(10월 1일)에 있다던 행진(혹은 시위)와는 차원이 달랐다. 멀리서 보고있자니 뭔가 이상했었다. 분명히 차로 가득해야 하는 그 길에 사람과 경찰이 마주하고 있다니 이상했고, 그 조용하던 사람들이 길에 나와 같은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는게 신기했었다. 97년도에 티비를 보며 '영국이 홍콩을 중국에게 돌려준다고? 1국가 2체제라니 이건 뭐야' 라고 생각했었는데 중국이 뒤에서 야금야금 노리고 있다는건 몰랐었다. 왕가위 영화에서 자주 나오던 2047년에는 홍콩특별자치구가 아니라 정말 중국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자기들 맘대로 할 수 있는게 없는 홍콩이 왠지 안타까웠다. 항인치항 이라더니. 그때 우리도 노란리본이 있었고, 홍콩은 우산혁명을 위해 노란리본을 썼다. 내 가방의 노란리본은 그때부터 두가지 의미를 갖고 달려 있었다. 거의 유일하게 홍콩 우산혁명에 대해 알려준 '그것은 알기 싫다'를 들으면서 코끝이 찡했었다. 정말 이때야말로 홍콩에 가고싶었다. 내가 가서 뭘 한다는건 아니지만.


주이가 만들어준 노란 리본은 아직도 잘 달고 다닌다.


나는 아직 그 유명하다던 웡타이신 사원도 안 가봤다. 주윤발의 고향이라는 청차우섬도 안 가봤고, 섹오비치도 안 가봤다. 드래곤스백도 가보고 싶은데 여긴 자신없다ㅋ. 부끄럽지만 홍콩에 몇번이나 갔으면서 제대로 된 딤섬을 못먹어봤다. 유명한 밀크티 대회에서 1등한 집은 그냥 지나쳤다. 어허 이런이런. 

왜 그렇게 가고 싶을까. 영화 중경삼림과 타락천사를 5번씩 보고 무간도 시리즈(총 3편이다), 지하철, 크로싱 헤네시, 블라인드 디텍티브, 심플라이프, 스페로우(다 영화제목!)를 한 번씩 보면 내 마음을 알까. 적어도 나에게 홍콩은 영화의 한장면이다. 안타까운 과거, 화려한 현재, 그리고 알 수 없는 미래까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단로드를 걸으면 현재진행형 영화 속을 걷는 기분이다. 

아. 일요일 오전에 카우룽공원에서 수다 떠는 동남아 언니들을 구경하며 에그타르트를 먹고 싶다. 살지 안 살지는 모르지만 센트럴 ifc몰에 네스프레소 매장에 가서 얼마인지 확인하고 싶다. 그리고 시티슈퍼에서 에코백도 몇 개 사오고. 여기서 파는 에코백 진짜 편하고 이쁜데. 샴슈이포에 어마어마한 전자상가는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다. 코즈웨이베이에 맛있다는 커피집에도 가보고 싶다. 몽콕에 샹하이 스트리트에 있는 갤러리들을 찬찬히 보고 싶다. 새로 열었다는 MTR역도 가고 싶다. 이왕이면 제대로 된 딤섬도 좀 먹어보고. 오션파크 케이블카도타보고 싶다. 대륙인들과 함께 타도 좋으니. 그리고 빅토리아 피크에서 오후 5시부터 기다려서 깜깜한 야경도 보고! 내려올 때는 15번 버스를 타야지. 센트럴에 있다는 양조위 단골우동집도 가야되는데.


일요일 오전에 카우룽공원에 가면 언니들이 신나게 수다떨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저 초록색 지붕집이 유명한 밀크티+프렌치토스트를 판댄다. 정말 수십번 지나갔었는데.


다 안 해도 좋으니 그냥 걸어만 다녀도 좋겠다. 혼자 가도 좋고 누군가와 같이 가도 좋다. 얼굴이 새까맣게 타서 너구리가 되어도 좋아.
걷다 보면 양조위를 마주칠지도 모르잖아. 그럼 너구리 상태로 양조위를 마주하는 건가...


버스타고 스탠리도 가고싶다. :)


p.s 홍콩 우산혁명에 대해 알기쉽게 소개해준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 에피소드는 '098 港人治港', '147b 誰還未發聲'입니다.
그리고 사진은 모두 식초가 찍은 사진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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