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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이의 별거있나

데익짬, 담째익 #02 왕복 8시간, 마을로 여행가다 _반띠아이츠마 첫번째 이야기

객관성을 왼손에 쥐고, 주관적인 오른손이 써내려간 여행기입니다. 

여행기획자로 캄보디아를 오고가며 했던 생각들, 만났던 사람들, 맞닥뜨린 경험들을 공유하고자 해요. 

'데익짬, 담째익'은 '한 숨 자고나서, 바나나 나무 심고 나서...'라는 캄보디아 말로 

유머러스하게 완곡하게 거절할 때, 또는 '여유를 가져~'라고도 말할 수 있는 표현입니다. ^-^


#02. 왕복 8시간, 마을로 여행가다 _반띠아이츠마 첫번째 이야기 


캄보디아의 우기가 시작되면 열대의 스콜이 6월의 무거운 공기를 굵은 빗방울로 흩트린다툭툭 기사들은 서둘러 비옷을 입고 두꺼운 비닐로 만든 커텐을 풀어 빗방울이 차량 내부로 들어오지 않게 한다오토바이에 2인용 의자가 마주보는 형태의 수레가 부착된 생김새인 툭툭은 한국의 택시같은 교통수단이다연중 더운 날씨라 툭툭의 시설도 안팎을 분리하는 문이 필요없다. 그저 햇빛을 가리는 천장만 있다면 달리는 툭툭이 가르는 바람이 에어컨을 대신한다툭툭의 비닐 천장을 뚫는 듯한 빗소리를 들으며 달리는 이 기분은 우기에만 맛볼 수 있는 여행자의 호사다이리저리 뛰는 사람은 있지만, 우산을 쓰는 사람은 별로 없다쭉쭉 뻗은 열대우림에서 들려오는 모터가 윙윙 거리는 듯한 곤충 소리가 시끄럽다캄보디아에선 이 소리의 주인공인 물매미를 잡아 볶아서 간식으로 먹는다시원하게 얼음을 넣어 마시는 앙코르 맥주와 물매미 안주는 우기의 후텁지근함을 식히고 여행자의 용기를 시험한다. 


아이들에게 우기란? 불어난 씨엠립 강에서 다이빙을 즐길 수 있는 시간! 


'유적지를 방문하는 날 되도록이면 비가 오지 않기를!' 하고 인솔자는 우기 때 전혀 먹히지 않을, 소용없을 기도를 해본다. '반띠아이츠마 가는 날 절대! 절대! 비가 오지 않기를!' 하고 학습력 떨어지는 인솔자(본인이다..)는 또 기도를 한다. 기어코 내리는 스콜을 보며 인드라(힌두교에서 비의 신, 무기는 천둥과 번개이다)를 원망하는 자신을 곧 발견하게 될거란 걸 알면서도... 

반띠아이츠마 마을은 앙코르 유적지가 몰려 있는 캄보디아 제3의 도시 씨엠립에서 차를 타고 4시간를 달려야 도착할 수 있다간혹 차창을 무섭게 때리는 스콜을 뚫고 여행자들을 태운 차량은 태국 방향으로 뻗은 고속도로를 달린다고속도로라고 해도 2차선의 포장도로일 뿐, 도로 요금을 받는다거나 바리케이드로 구분되어 있지는 않다지평선까지 펼쳐진 논밭과 드문드문 자리한 마을이 고속도로의 좌우로 보이고 자전거 타고 등하교하는 학생들돼지를 오토바이에 싣고 가는 아저씨, 귀가하는 소떼들을 지나쳐가는 정겨운 길이다.



구글맵. 시엠레아프(본문에서 씨엠립 표기)에서 시소폰, 시소폰에서 밴티 크머(본문에서 반띠아이 츠마)까지 

총 4시간이 걸리는 대장정! 시소폰에서 서쪽으로 쭉쭉 가다보면 태국 방콕에 다다른다. 


2시간의 포장도로를 달리면 시소폰에 도착한다태국에서 육로로 국경을 넘어오거나 태국을 향해 가는 사람들이 잠시 쉬어가는 곳이다이른 아침에 방콕을 출발해 캄보디아 씨엠립을 향하는 피곤한 기색의 배낭 여행자들도캄보디아와 태국을 오고가며 물건을 사고파는 상인들도 시소폰에서 한숨 돌린다반띠아이츠마로 향하는 우리에게는 재래시장 구경도 하고, 눈치 보며 휴게실 화장실도 이용하는 그런 곳이다이곳을 지나면 반띠아이츠마 마을까지 연결된 비포장도로가 시작된다"캄보디아 마사지가 시작된다"며 농담을 건네는 현지 가이드도오랜만에 겪어보는 비포장도로에 즐거워하던 여행자들도 점점 말수가 적어진다서툰 발음과 기억력을 탓하며 마을 사람들에게 건넬 기본 캄보디아 회화를 배우다가, 자다가, 깨다를 반복하며 바깥 풍경을 감상하다가 지칠 때쯤이면 ‘Banteay Chhmar Community Based Tourism(반띠아이츠마 지역기반관광)’이라 적힌 갈색 나무 간판이 보인다.

드디어 도착이다! 

미소짓는 익숙한 얼굴들을 보니 안도와 반가움이 밀려든다. 



반띠아이츠마 사원은 12세기말에 지어졌다. 캄보디아 정부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시키기 위해 노력중인 

사원군으로 10개의 사원이 몰려 있다. 


지난 800년동안 현재의 태국과 캄보디아 사이에 위치한 지리적 이유 탓에 상당 부분 훼손되었고, 복원의 노력도 거의 없었다. 2009년부터 월드헤리티지펀드 주도로 복원을 진행중이다. 


서쪽 회랑에 남아 있는 관세음보살 부조상. 마을 사람들이 여전히 향을 피우며 소원을 빈다. 

꽤 영험하다는 소문!


반띠아이츠마 마을에는 앙코르 문명의 절정기인 12세기에 건립된 10여개의 사원이 자리하고 있다마을과 같은 이름인 반띠아이츠마 사원이 중심사원으로 우리나라 우렁각시와 비슷한 내용의 고양이 설화가 내려오고 있다변방으로 쫓겨나 혼자 힘겹게 살고 있던 왕자를 가여워한 힌두교의 인드라 신이 왕자를 도우라는 특명을 내려 천사를 왕자에게 보낸다천사는 고양이의 모습이었다가 왕자가 농사를 하거나 나무를 구하러 밖에 나갈 때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해 음식을 만들어놓고 집을 돌본다이를 이상하게 여긴 왕자가 하루는 밖에 나가는 척 하고 집에 숨어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게 되었고, 청혼해 둘이 함께 살게 된다그러던 어느날 천사는 본인이 고양이의 모습일 때 불에 던져줄 것을 청하고 고양이의 분신이 성으로 변해 지금의 반띠아이츠마 사원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반띠아이는 성채, 성을 의미하고 츠마는 사람들과 함께 사는 작은 동물을 뜻한다둘이 행복하게 살지 왜 쓸쓸하게 성채만 남겨놓고 사라져 버렸나 허무하기도 하지만, 당시 뛰어난 건축 기술로 완공 기간이 굉장히 짧았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가 만들어졌을까혹은 인드라 신의 이름을 빌어 왕자의 정통성을 내세워야 할 만한 정치적인 상황이 있었던 걸까 하고 상상해 보는 것도 재미있다.


캄보디아의 전통가옥은 1층이 가족 공동공간으로 비워져 있다. 요리, 집안일 등을 하는 공간. 

이곳에서 해먹에 누워 빗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여기서 살고 싶어! 하는 순간적 충동이 들기도.. 


반띠아이츠마 마을에서의 저녁식사는 사원앞에 돗자리를 펼쳐놓고 주민분들이 직접 만들어주신 음식을 먹는 것이다. 

식사 후엔 전통음악에 맞춰 여행자와 주민이 함께 춤추고 한바탕 논다.  


이 반띠아이츠마 사원을 감싸듯 다섯개의 마을이 주변을 빙 두르는 모습으로 위치해 있다거리가 약간 떨어져 있지만 같은 행정구역으로 엮이는 마을까지 합하면 약 14,000명의 주민이 총 14개의 마을에 살고 있다사원 근처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이는 시장과 보건소, 초등학교와 현대식 절이 자리한다카사바, 쌀을 주로 재배하는 농업과 태국과 가까운 탓에 소규모 무역이 주요 수입원인 이곳에 여행자가 방문하기 시작한 것은 10년도 채 되지 않은 때의 일이다태국과 캄보디아 국경을 넘나드는 배낭여행자들이 앙코르 유적군 중의 하나인 반띠아이츠마 사원에 대한 소문을 듣고 찾아오기 시작한 것이다사원을 꼼꼼히 둘러보려면 족히 꼬박 하루가 걸리는데, 마을에는 손님을 맞을만한 식당도 숙박시설도 없었다또, 사원 입장료부터 물이나 음식 등의 물건값까지 정해진 것이 없어 말이 잘 안통하는 여행자들은 고무줄 요금을 내야 했고, 유적이나 마을에 대해 적절한 안내를 받을 수도 없었다


이곳에서 마을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홈스테이와 식사, 여행 프로그램을 시작한 것은 2007 7월이었다여행자를 위한 시설을 만들고 가격을 정리해 마을의 관광자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마을의 수입을 늘리는 것, 마을의 문화와 역사를 알리는 것이 마을 사람들이 CBT(Community Based Tourism : 지역기반관광. 마을 주민 주도로 마을의 역사, 문화, 자연 자원을 활용해 만드는 지속가능한 여행 프로그램과 넓게는 그 조직까지를 아우르는 용어)를 조직하게 된 이유였다15명의 마을 주민으로 시작한 CBT는 현재 참여 주민 수가 70명이 넘는 조직으로 성장했다여행 프로그램을 통한 수입 중 일부는 반드시 마을 공동의 발전 기금으로 적립한다한 달에 한 번 열리는 마을 회의에서도 각 마을 대표와 학교 교장 선생님, 보건소 의사 선생님과 함께 CBT 대표도 참가해 의견을 낸다.


반띠아이츠마 마을. 이날 하루동안 차가 네 번쯤 빠졌나보다. 여행자, 가이드, 지나가던 동네 사람들이 모두 한 힘 보탠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2010년에 여행 기획자가 이 마을을 처음 방문했을 때씨엠립에서 반띠아이츠마 마을까지 가는 대중교통수단이 없었다택시를 섭외하려 해도 많은 택시 기사들이 너무 멀고 길이 험하다며 손사레를 쳤다심지어 어떤 택시 기사들은 반띠아이츠마 마을이 어디냐며 되려 기획자에게 묻기도 했다지금도 우기 때에는 웃돈을 얹어줘야 기사님들이 움직인다비포장 도로를 한 번 다녀오면 차가 망가지는 게 뻔하니 미리 보상하라는 거다우기 때는 진창이 되어버린 마을길에 버스 바퀴가 빠져 여행자들이 바지 걷어붙이고 힘을 보태야 하는 일이 왕왕 발생하고건기 때는 고운 흙먼지가 차량 내부에 들어와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야속하게 멈춰버린 차량에서 내려 힘을 보태는 여행자들의 얼굴엔 기사님에 대한 걱정과 예상치 못한 일에 대한 약간의 흥분까지 감돈다.내 속은 타들어가도 여행자는 길 위에서의 우연을 즐길 줄 안다. 한 여행자는 귀국 후 나눈 전화통화에서 "신발 더러워질까봐 걱정만 했는데, 그 진흙을 맨발로 걸어보지 못한게 후회가 돼요!" 라며 혹시 또 그런 상황이 오면 여행자들에게 맨발로 흙을 밟아보라고 권유해보면 좋겠다는 조언까지 할 정도다.  


한국에서는 이중 섀시로 외부와 완벽하게 차단된 아늑함을 누렸던 여행자들이 얇은 나무벽과 틈이 난 창문(유리 없는)으로 새벽부터 들려오는 동네 개와 닭 울음소리에 잠을 설치며 전기도 마음껏 사용하지 못하고, 따뜻한 샤워도 불가능한 그곳에서의 1박 2일 마을 여행을 시작한다. 


(다음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