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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이의 별거있나

데익짬, 담째익 #01 캄보디아는 처음이지?

객관성을 왼손에 쥐고, 주관적인 오른손이 써내려간 여행기입니다. 

여행기획자로 캄보디아를 오고가며 했던 생각들, 만났던 사람들, 맞닥뜨린 경험들을 공유하고자 해요. 

'데익짬, 담째익'은 '한 숨 자고나서, 바나나 나무 심고 나서...'라는 캄보디아 말로 

유머러스하게 완곡하게 거절할 때, 또는 '여유를 가져~'라고도 말할 수 있는 표현입니다. ^-^



#01. 캄보디아는 처음이지? 


건기의 캄보디아. 자전거를 타다가 소를 만나면? 서로 눈치를 보며 각자 나아가면 된다. 


캄보디아 씨엠립 공항에 처음 발을 디딘 건 2012 5월 말이었다1월부터 시작된 건기가 절정에 달하고 있을 때였다비 한 방울을 내리기 직전까지 지상의 온갖 수분을 빨아들이려는 듯 공기는 턱턱 막히고 무거웠다여행자들은 이 때를 피해서 여행을 하면 그만이지만, 출장은 오히려 비수기가 적기다주요 유적지마다 관광객이 적으니 사진 찍기도 좋고만나야 하는 현지의 파트너들도 한숨 돌리며 다음 성수기를 준비할 때이니 서로가 여유롭다80%를 넘나드는 습도와 38도의 기온, 남국의 강렬한 햇빛만 내가 견딘다면.


연도별 캄보디아 입국 외국인 수. 순위는 2014년 기준, 2012년에는 베트남에 이어 남한이 가장 많은 수를 기록했다.

<출처 : Wikipedia, 'Tourism in Cambodia> 


2012년 캄보디아는 그야말로 한국 여행자들의 천국이었다. 연간 40만의 한국 여행자들의 여권에 캄보디아 비자가 부착되었다국경을 접하고 있어 주말을 이용한 여행자들이 많았던 베트남에 이어 2번째로 많은 수의 입국자를 한국인이 기록했다하나투어에서 만든 캄보디아 패키지 여행은 2004년부터 호황이었고, 2010년부터 시작한 우리는 후발주자였다여행지를 선점해 독특한 목적지를 먼저 소개하는 것이 여행사의 경쟁력이라고 누가 말한다면, 우린 뒷북 중에서도 뒷북인 셈이었다하지만 여행산업이 초래한 경제적 불평등, 환경 오염 등의 사회적 문제를 여행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꿈과 포부를 갖고 있던 우리에게 캄보디아만큼 좋은 지역도 없었음은 분명하다.


아시아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대형 여행사들의 프로그램은 당시 저가전략이 대부분이었다여행붐에 발맞춰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으로 해외여행을 갈 수 있다는 소비자 욕구를 건드린 것이다태국부터 시작한 저가 여행은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 등 동남아 지역이 주요 목적지였다왕복 비행기 값도 안되는 50만원 내외의 가격으로 3 5일 해외여행이 가능하니 제주도 갈 바에 해외 한 번 나갔다 오자는 소비자 심리 겨냥은 적중했다당시 회사 대표와 기획팀장이 조사차 참가한 태국 3 5일 프로그램은 299,000으로 비행기 삯보다도 저렴한 가격이었다물론 이 가격에는 아웅!’이 있다. 가격으로 일단 눈을 가린 다음, 숨은 비용은 여행지에서 요구하는 방식이었던 것숨은 비용의 명목은 주로 호텔 사양 업그레이드, 가이드와 운전기사 팁, 쇼핑, 실제 가격보다 뻥튀기된 옵션 프로그램 등이었고, 개중에는 다소 강제성을 띤 것도 있었다. 사실, 초저가 패키지는 거의 강제성이 있다고 볼 수 있었다. 



캄보디아를 찾는 거의 모든 여행자가 들르는 곳. 앙코르와트. 

앙코르와트는 유적지 전체의 이름이 아니라 앙코르 시대 지어진 건물 중 한 사원의 이름이다. 


우리가 주목한 사회적 문제는 이런 숨은 비용이 현지의 여행 종사자의 몫으로 돌아가지 않을 뿐 아니라저가를 만들기 위해 출혈을 감당하는 쪽 역시 그들이라는 것이었다여기에 더해 여행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여행자가 여행 중 겪게 될 불쾌함이 거슬렸다현지의 여행 종사자들 사이에서는 제로섬이 분명한 도박과도 같은 여행산업 구조 속에서 캄보디아는 싼 맛에 가는 여행지백만원짜리 상황버섯을 구입해 오는 곳이 되어가고 있었다9세기부터 15세기까지 장장 600년의 앙코르라는 대단한 문명을 발아시킨 캄보디아를그 역사와 문화와 사람을 오롯이 대등하게 만나는 방법이것이 캄보디아 여행 기획의 숙제였다


내가 담당자가 되기 전부터 이런 노력들로 만들어낸 캄보디아 여행은 이미 진행중이었다. 

첫번째. 앙코르 유적지를 보다 깊게 이해하기 위해 캄보디아인 전문 가이드와 함께 하는 여행. 

여행을 시작한 초기에는 영어 가이드의 안내를 인솔자가 통역하며 진행했는데, 안그래도 체력을 요구하는 방대한 규모의 앙코르 유적지 탐방에 통역의 피로가 더해졌다. 차차 한국어를 사용하는 전문 가이드의 등장으로 이 문제는 해결할 수 있었다

두번째. 다함께 쇼핑센터를 가는 대신, 공정무역 가게나 현지 시장 정보를 알려주며 자유시간을 갖는 여행. 

캄보디아가 바가지 쇼핑의 메카라는 오명과 쇼핑 수익의 불균형은 여행자에게 자유 쇼핑 시간을 주되, 고용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고용해 좋은 물건을 만드는 사회적기업이나 공정무역 가게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세번째. 수익의 선순환을 고민하는 숙소와 식당을 이용하는 여행. 

숙소와 식당을 고를 때도 되도록이면 지역 사회에 고용, 교육, 친환경 등의 방법으로 선순환을 추구하는 곳을 찾았다

네번째. 사람과 마을과 문화를 직접 만나는, 교류하는 여행. 

여행자와 현지 주민이 서로 만나 문화를 교류하는 방법으로 마을 방문 프로그램을 시작했다종종 여행자로부터 앙코르와트보다 1 2일 마을 여행이 더 기억에 남는 피드백을 받았다


출장 때 들른 씨엠립 인근 마을에서. 동네 아이들과 함께 논(말라 있지만!) 바닥에 숨어 있는 개구리 찾는 중. 

옛날 우리들처럼 캄보디아에서도 개구리를 요리해 먹는다. 


나는 기본 뼈대에 살을 더하고, 내용을 풍부하게 하는 역할을 맡았다. 현지의 사람들이 일한 만큼 정당하게 돈을 벌어야 한다 생각했고캄보디아에서 만난 사람, 역사 유적, 문화와 자연이 오래도록 여행자의 가슴 속에 남길 바랐다.  여행사로서는 늦은 출발이었고, 여행지로써는 이미 너무 유명한 곳이었지만 캄보디아에서 여행으로 새롭게 할 수 있는 일은 많았다.


우리와 비슷한 문제의식을 갖고 여행 산업의 변화를 꾀하기 위해 활동하는 파트너들을 찾았다시작은 인터넷 검색이었고, 그렇게 한 두개의 기업이나 NGO, 공정무역 관계자와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서 파도 타듯 소개가 이어져 또 다른 단체나 사람들을 알게 되는 식이었다탄탄하게 운영 중인 사회적기업이나 NGO들 중에는 주로 유럽이나 미국 등의 소위 선진국 출신의 사람들이 캄보디아에 정착해 시작하게 된 사례가 많았고점차 운영의 주도권을 캄보디아 현지인이 쥐게 된 경우가 생겨나고 있었다이들과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한국 여행업계가 캄보디아나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벌이고 있는 여행 비즈니스의 문제점이 더욱 두드러졌다

반강제적 쇼핑과 옵션투어, 수익의 대부분이 캄보디아 현지 경제로 흘러들어가지 않는 구조역량을 발휘할 수 없는 현지 여행업 종사자들 등에 대한 문제의식은 캄보디아에서 여행을 통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프로젝트를 진행중인 미국인 사라(Pepy tour), 영국인 마이클(ConCERT Cambodia), 스웨덴인 켄(The White Bicycle)도 갖고 있었다.

 


많은 가이드들과 일을 했다. 그 중에, 한국어 가이드 보타나(왼쪽), 영어 가이드이자 생태 전문 가이드 소반(오른쪽)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가장 직접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캄보디아인 예비/현직 한국어 가이드들이었다. 얼음을 넣은 캄보디아 맥주 앙코르 비어를 마시며 때로는 함께 분개하고 때로는 조금 다른 걸 해보자고 뜬구름을 잡고또 때로는 먼저 변화를 꾀하고 있었던 사람들에 감탄하면서 캄보디아에서 함께 일할 파트너를 그렇게 조금씩 만들어 나갔다.

 

그렇게 덧붙여간 살들에 대해 조금씩, '데익짬, 담째익' 하며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캄보디아의 마을 여행, 수상가옥 마을 여행, 한국어 가이드들, 질 좋은 공정무역 가게들 이야기, 재미난 레스토랑 이야기 등등. 더불어 캄보디아의 흙먼지 길 위에서 땀 흠뻑 흘리며, 순간 뒤통수를 치는 듯한 찌릿함으로 문득 들었던, 그러나 오랜 시간 날 붙잡아 두었던 고민들에 대해서도 털어보고자 한다. 

별 거 있나? 별 거 있을 때도 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