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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이의 별거있나

데익짬, 담째익 #05 수상마을의 일상 속으로 (1) 톤레삽 보트투어

객관성을 왼손에 쥐고, 주관적인 오른손이 써내려간 여행기입니다. 

여행기획자로 캄보디아를 오고가며 했던 생각들, 만났던 사람들, 맞닥뜨린 경험들을 공유하고자 해요. 

'데익짬, 담째익'은 '한 숨 자고나서, 바나나 나무 심고 나서...'라는 캄보디아 말로 

유머러스하게 완곡하게 거절할 때, 또는 '여유를 가져~'라고도 말할 수 있는 표현입니다. ^-^


#05 수상마을의 일상 속으로(1) 톤레삽 보트투어 


씨엠립 남쪽으로 툭툭이 달린다. 시가지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다닥다닥 모여 있는 작은 가게들이 띄엄띄엄 해지는 광경이 두어번 반복되면 나무로 만든 지주식 수상가옥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동남아 최대의 담수호, 톤레삽 호수로 들어가는 길이다. 톤레삽은 '위대한 호수'라고 의역되지만, 그 이름을 직역하면 민물의() 넓은 호수(톤레)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호수는 원래 민물인데 그 의미가 쌩뚱맞다. 굳이 한 번 더 민물이라고 이름에서 밝힌다

봐라, 보기엔 바다와도 같은데 짜지 않고 민물인 것이 놀랍지 않느냐?’라고 그 이름이 묻는 것만 같다



톤레삽은 넓다. 그냥 넓은 게 아니라 무지 넓다. 게다가 동남아 5개국을 흐르는 어머니 강, 메콩강과 연결되어 있다. 중국 남부에서 발원해 버마, 태국, 라오스의 국경선을 긋기도 하고 베트남 남부 지역의 비옥한 삼각주를 형성한 후 남중국해로 흘러드는 메콩강이 우기의 범람을 맞이할 때 그 넘치는 물을 고스란히 담아 주는 넉넉한 품의 호수가 바로 톤레삽 호수이다. 메콩강의 수량을 받을 정도이니 건기와 우기 때 톤레삽의 면적 차이도 크게 난다. 그 차이가 약 5~6배 정도까지 되는데, 남한의 면적과 비교해보면 건기 때의 크기가 충청남도의 1/3 정도, 우기 때 최대 넓이가 충청남도와 북도를 합한 만큼이나 된다. 


풍부한 물은 다양한 서식지를 낳고 생태계를 풍요롭게 한다. 이곳에는 약 150종의 어류(자료에 따라 그 수의 차이가 크다. 여기서는 wikipedia의 인용을 따름), 200여종의 식물이 서식하고 있고, 시암 악어와 민물뱀의 최대 서식처이기도 하다. , 멸종위기종을 포함한 철새들이 날아와 알을 낳는다. 메콩강이 범람할 때는 그물에 잡히는 물고기가 풍부해진다. 건기 때도 잡히는 원래 이곳에 살고 있는 물고기들이 검은색 종류가 많고, 우기 때는 메콩강의 흰색 물고기 종류가 많이 들어와 흔히 Black fish류와 White fish류로 분류하기도 한다. 캄보디아의 한국어 가이드 보타나 씨의 말을 빌리면, 아니, 그의 어머니의 말을 보타나를 통해 빌리면, 옛날에는 물고기가 너무 많아 노 저을 때 채일 정도였단다. “말 그대로 물 반, 고기 반이었어요.”라고 말하는 보타나에게 에이, 과장하지 말라며 퉁을 주긴 했지만 여전히 캄보디아 사람들 단백질 섭취의 60% 정도가 톤레삽 호수에서 충당되고 있다. 풍요로움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을 불러들였고, 톤레삽 호수에는 약 120만명의 사람들이, 또 호숫가의 거주민까지 합하면 약 300만명의 사람들이 톤레삽 호수에 기대어 살고 있다.


캄보디아 한국인 가이드 왱. 최고의 가이드들 중 한 명! 뒷배경으로 노에 채일 만큼 많은 물고기들이 보인다?

@바이욘 사원


씨엠립을 찾는 사람들이 앙코르 유적지를 둘러보다 꼭 들르는 곳이 바로 이곳 톤레삽 호수이다. 앙코르 문명을 이룩한 크메르 왕국의 번영을 가능케 했던 그 풍요로움과 역사를 상상해 보기에 톤레삽 만한 곳도 없다. 앙코르톰의 중심사원 바이욘에는 톤레삽에서의 수상 전투 장면이 부조로 묘사되어 있다. 크메르 전사와 시암 전사들이 싸우는 악어와 물고기가 가득한 호수가 바로 톤레삽이다. 또, 일상적인 사건이지만 일상에서는 거의 볼 수가 없는 일몰, 그 아름다움을 즐기기에도 톤레삽이 제격이다. 망망대호(!)의 잔잔한 출렁임 위에서 바라보는 붉은 노을은 앙코르 유적지 탐방객의 하루를 아름답게 마무리하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관광객들을 톤레삽으로 이끄는 것은 배 위에 집을 짓고 살아가는 수상마을이 있기 때문이다


총끄니에서 배를 타면 늘 꼬마 한 명이 따라 탄다. 보트 운전사의 가족인지, 동네 꼬마인지 간혹 허드렛일을 돕고 

용돈을 받기도 하는데, 이게 직업 같은 일인지 용돈 수준인지 애매하다. 


여행자가 여행사 상품을 이용하거나 개별적으로 툭툭 기사를 대동하고 주로 방문하는 톤레삽 수상마을은 총끄니라고 불리는 지역으로 시내에서 약 20km 남쪽으로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선착장에서 배를 빌려 타고 총끄니 수상마을까지 들어갔다가 좀 더 나아가 바다처럼 넓은 톤레삽을 구경한 다음 다시 되돌아오는 2시간 가량의 코스가 대표적이다. 총끄니에는 베트남에서 망명해온 사람들이 수상마을을 이루어 살고 있고, 베트남어로 간판이 적힌 수상학교도 볼 수 있다.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지역이다보니 마을 주민들도 어업이나 농사와 더불어 관광객 대상의 장사를 한다. 일정 규모 이상의 휴게소를 겸한 수상 식당과 기념품 가게는 자본이 투입되어야 하니 아무래도 외부인이 들어와서 하는 경우가 많고(현재 총끄니로 들어가는 선착장은 개인 회사가 관리하고 있다), 주민들은 좁고 긴 배에 음료수가 가득한 아이스박스를 싣고 다니며 관광객에게 판매한다. 주로 어린 아이가 이쪽 배로 폴짝 넘어와 코카콜라 캔을 내밀고, 때론 어른들의 어깨를 주무르며 마사지를 하고 손을 내민다. 어떤 꼬마들은 커다란 뱀을 목에 걸고 고무통(흔히 다라이라 불리는 것!)을 배 삼아 관광객에게 다가와서는 사진 모델이 되어주고 돈을 받기도 한다. 관광객용 보트를 운전하는 기사들은 선착장을 운영하는 회사에 고용되어 있지만 제대로 된 월급을 받지 못할 것이다. 부족한 임금은 여행자의 자발적인 팁으로 충당된다. 

 

처음 톤레삽 수상마을을 방문했을 때 나의 마음을 가득 채운 것은 '불편함' 이었다. 내가 탄 보트는 시끄러운 모터소리를 내며 수상가옥 바로 옆을 지나갔고, 그 출렁거림에 수상가옥들이 가차없이 흔들렸다. 호수에서 그물을 손질하거나 머리를 감는 마을 사람들, 헤엄을 치며 노는 아이들은 관광객들의 카메라에 거리낌 없이 담겼다. 수상가옥의 화장실 오물을 바로 호수로 흘려보내고, 그 물을 떠서 마을 사람들이 밥을 짓고 먹는다는 설명은 거짓을 말하지 않지만 사실이지도 않으면서 관광객들의 웃음을 자아냈고, 그렇게 관광객들을 태운 배는 마을과 분리된 채 관광을 이어갔다.


공정여행 기획자로서 캄보디아 프로그램 중 가장 바꾸고 싶었던 것이 바로 톤레삽을 방문하는 일정이었다. 아마도 일생에서 단 한 번 톤레삽 수상마을을 방문하게 될 가능성이 큰 여행자들에게 다른 방식으로 이 색다른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관광객 아니면 마을 주민들, 돈 내는 외국인 아니면 어깨를 주무르는 마을 꼬마의 이분법을 흩트리고 싶었다. 관광산업에 치인 모습이 아니라 지금을 온전히 들여다보고 내일을 그려 볼 수 있는 모습이면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관광지 역시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라 박제된 오늘만 있는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톤레삽 수상마을을 방문하는 프로그램의 시선은 딱 그런 식이었고, 마을 주민들의 속마음은 한 사진작가의 ‘Fucking Tourist’ 프로젝트가 대변하는 것에 가까울 것이었다. 


캄보디아인 가이드들에게 총끄니 마을 말고 다른 곳은 없는지, 다른 프로그램은 없는지 묻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지난 캄보디아 출장 결과보고서를 모두 뒤졌다. 구글에 온갖 키워드로 검색을 했다. 씨엠립의 공정무역 업체, 사회적기업, 청소년 트레이닝 레스토랑, 지속가능한 비즈니스를 지향하는 호텔 담당자, NGO 관계자를 만날 때도 한동안은 톤레삽이 이슈였다. 그러다가 다른 수상마을도 가보게 되고, 여행자를 데리고 가 피드백도 수집하고, 톤레삽 에코투어를 표방하는 단체의 홍보 포스터를 배에서 우연히 발견하기도 했다. 그 단체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수상가옥 홈스테이, 건기 때를 활용한 트레킹과 자전거 하이킹 등의 프로그램을 봤을 때 얼마나 신났던지! 하지만 결국 전화도 이메일도 연결이 안 된 채로 끝나버렸다. 홈페이지의 정보와 사진들은 이 단체가 설립된 직후 혹은 설립하기 위해 찍어놓은 자료들인 것 같았다. 


Osmose 오스모스와 함께 방문한 수상마을. 큰 배에서 쪽배로 옮겨타고 수상마을을 둘러보고 있다. 


톤레삽 수상마을을 방문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지속가능한 관광과 지역 주민의 삶의 개선을 도모하는 단체들이 있긴 했다. 오스모스Osmose와 삼비에스나센터Sam Veasna Center 등이 그렇다. 문제는 답사를 가보려고 해도 혼자 참가하기에는 비용이 비쌌고,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번번이 일정이 취소되기 일쑤였다. 소규모 여행을 지향하는 우리로서는 안그래도 높은 여행경비가 더 올라가게 생겼으니 선뜻 추가할 수도 없었다. 기회가 찾아오기 전까지 고민의 시간이 흘러갔고, 그 동안은 가장 상업적으로 변하고 있는 총끄니 수상마을 대신 캄퐁 클레앙이라는 수상마을로 방문지를 변경했다. 캄퐁 클레앙은 물 위에 떠 있는 수상가옥과 높다란 기둥 위에 집을 지은 지주식 수상가옥이 함께 있는 마을로 앙코르 초기 유적인 롤루오스 유적군의 남쪽에서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비교적 한가하고 덜 상업적인 모습에 마음이 놓였다. 배를 타고 가다가 내려 물고기를 훈제하거나 말리고 있는 사람들과 간단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는 곳이었다. 또, 물에 뿌리를 내리고 서식하는 맹그로브 숲 사이를 노 젓는 배를 타고 유람하는 독특한 경험도 가능했다. 노 젓는 사람들은 모두 마을 주민인 주부들이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대형 관광 버스가 캄퐁 클레앙으로 들어오기 시작했고, 마침 다른 수상마을을 가볼 기회도 드디어 생겼다. 



+사진작가 Nicholas Demeersman의 'Fucking Tourist’ 프로젝트 사이트  http://jolipunk.over-blog.com


(다음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