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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이의 별거있나

데익짬, 담째익 #03 왕복 8시간, 마을로 여행가다 _반띠아이츠마 두번째 이야기

객관성을 왼손에 쥐고, 주관적인 오른손이 써내려간 여행기입니다. 

여행기획자로 캄보디아를 오고가며 했던 생각들, 만났던 사람들, 맞닥뜨린 경험들을 공유하고자 해요. 

'데익짬, 담째익'은 '한 숨 자고나서, 바나나 나무 심고 나서...'라는 캄보디아 말로 

유머러스하게 완곡하게 거절할 때, 또는 '여유를 가져~'라고도 말할 수 있는 표현입니다. ^-^



#03. 왕복 8시간, 마을로 여행가다 _반띠아이츠마 두번째 이야기 


4시간의 차량이동을 마치고 반띠아이츠마 사원을 둘러싸고 있는 해자와 CBT(마을기반관광, 쉽게 '마을 여행'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사무실 건물 사이에 난 길에 여행자 버스를 주차시킨다. 이 도로는 사원과 각 마을, 시장과 보건소를 잇는 주요 도로이지만 포장되지 않은 흙길이다. 건기에는 자전거나 오토바이가 지나갈 때마다 흙바람이 불고, 우기에는 빗물에 패인 길에 버스 바퀴가 종종 빠져 여행자 여럿이 달라붙어 차량을 미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한다.

주차하는 버스를 보고 CBT 건물에서 뛰어나온 소펭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모으고 인사한다.


쭘립쑤어(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쇼펭'이 아니고 '소펭'입니다. 라고 늘 이야기해야하는, 반띠아이츠마의 청년리더! 소펭 


소펭과 마을 청년 몇명은 CBT사무실에서 시간을 정해놓고 평일에 마을 아이들에게 크메르어(국어)와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소펭은 반띠아이츠마 마을에서 나고 자란 주민으로 CBT의 시작부터 참여해 마을 가이드, 홈스테이 호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가 여행자와 함께 마을을 방문하기 시작한 즈음 결혼을 하고,  2년 후에 딸을 낳아 한국 이름 영희와 비슷하게 영히우라고 이름 붙였다. 영히우가 태어나던 날도 우리 여행자들이 마을에 머무르고 있었다. 소펭은 마을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해외 NGO활동가로부터 영어를 배우고 이제는 방과후 교실을 열어 마을 청소년과 초등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주고 있다. 여행자가 마을을 방문하면 마을 소개부터 사원에 대한 역사적인 사실까지 마을 가이드의 역할을 하며, 2014년부터는 CBT의 회장직을 맡아 더 바빠졌다. 

4시간 여의 장거리 이동에 지친 여행자들은 대나무를 쪼개고 엮어서 벽을 만든 마을식당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CBT 사무실과 딱 붙어 있는 식당은 여행자들이 식사를 하기도 하고, 벽에 붙어 있는 마을에 대한 소개자료를 볼 수도 있는 베이스캠프 같은 공간이다. 여느 캄보디아 건물처럼 유리창이나 두꺼운 벽 없이 외부와 연결되어 있어 에어컨은 이곳에서 소용 없다. 오래된 선풍기 두 대가 털털거리며 돌아가고 있을 뿐이다. 마을에서는 웰컴드링크로 사람 수 만큼 야자 열매에 빨대를 꽂아 준비해 두셨다. 아마 오늘 아침에 몇 집을 돌아다니며 따온 것이리라. 어딜 가든 흔히 볼 수 있는 야자나무는 논밭에 심어 경계를 삼기도 하고, 잎이나 껍질, 기둥은 집을 짓거나 배를 만들 때 사용한다. 열매는 먹고 꽃에서는 설탕을 뽑는다. 그래서 캄보디아에는 이런 말이 있다. 

 

야자 나무 한 그루를 심는다는 것은 먹을 것과 마실 것, 배와 옷, 가족이 살 집, 자식에게 물려줄 유산을 심는 것이다.”


직접 기른 채소와 닭, 농사지은 쌀로 만들어진 로컬푸드가 식탁에 오르고(물론, 조미료는 사용한다) 소펭과 식사 담당 마을 주민들은 연신 부족한 게 없는지 확인한다. 반띠아이츠마에서 여행자들이 먹는 음식의 대부분은 모두 이 지역에서 키운 것들이다. 탄소발자국이 가장 큰 음식이라면 인스턴트 커피 정도?  마을 주민 중 음식 담당으로 참여하는 요리사들(대부분 마을 주민인 주부)이 캄보디아식 집밥을 만들어 주시고 여행자는 1 2일 동안 모든 식사를 이분들의 손에 맡기게 된다. 여행자가 밥값으로 지불한 금액 중 일부는 재료비와 인건비로 돌아가고 또 일부는 마을 공동기금으로 적립된다. 밥값 뿐만이 아니라 가이드 비용, 홈스테이 비용, 공연 비용 등 여행자의 모든 지출의 정해진 금액 얼마만큼은 마을을 위한 비용으로 쌓이게 된다. 



캄보디아 전통가옥의 1층은 주로 공용 공간, 2층으로 올라가야 주거 공간이다. 기둥은 뱀이 타고 올라오지 못하게 네모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마을에서는 현재 8집이 홈스테이에 참여하고 있다. 빈 방이 있는 집 중에서 홈스테이 조건에 맞는 요건을 충족한 집이 여행자들을 맞이할 수 있다. CBT에서 정기적으로 관리 및 지원을 하는 것은 물론이다. 가정집이기에 빈 방이 2~4개 남짓이라 여행자는 서너 집에 흩어져 숙박하게 된다. 캄보디아의 전통가옥은 나무로 만들어진 지주식 구조이다. 요즘은 1층에도 벽을 세우고 방을 만들어 거주공간으로 개조하는 경우가 많지만 원래는 무더운 날씨와 비, 야생동물을 피해 1층은 뻥 뚫린 공간에 부엌, 평상 등 가족의 공용 공간으로 사용하고, 거주하는 방은 2층에 만드는 게 보통이다. 1층의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해먹을 달아 무더운 날씨를 피해 쉬어가기 좋게 되어 있고, 기둥의 모양새는 뱀이 올라오지 못하게 모두 사각형으로 만들어졌다. 오후에 한가로이 해먹에 누워 있다보면 닭과 오리가 무언가를 쪼며 옆을 지나가고, 한차례 스콜이라도 내리면 그 시원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여행자들은 해먹에 누워 셀카를 찍고, 책을 읽기도 하고 그러다 깜빡 잠이 들기도 한다.


붐비는 씨엠립의 사원군에 비해 반띠아이츠마 사원은 거의 한적한 편이다. 덕분에 조용히 구석구석 누비며 사원을 감상할 수 있다. 


시골에서의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다보면 마을 가이드인 소펭이 집집마다 돌며 여행자들을 모은다. 마을의 대표 사원인 반띠아이츠마 사원을 탐방하러 갈 시간이다. 12세기에 지어진 반띠아이츠마 사원은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자야바르만 7(c.1120/1125-1220)가 자기 아들을 위해 만든 사원으로 알려져 있다. 아직 보수 작업이 끝나지 않아 이곳저곳 무너진 벽들이 많지만 앙코르 시대에 만들어진 사원 중 4번째로 크다는 그 규모를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폐허 속에 남아 있는 석상과 부조의 완성도는 이 사원의 수준을 말해준다. 씨엠립과 멀리 떨어져 있어 여행자의 발길이 드문 탓에 반띠아이츠마 사원을 방문할 때면 그곳을 둘러보는 사람들은 늘 우리 팀 뿐이다. 간혹가다 나들이 나온 캄보디아 사람들 몇명과 마을에서부터 호기심에 우리 일행을 따라온 동네 꼬마들과 함께 하기도 한다. 마치 고대 유적을 발견한 탐험가가 된 듯 폐허가 된 유적지 곳곳을 다니다 보면 반띠아이츠마 사원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관세음보살상 부조를 만날 수 있다. 여전히 마을 사람들이 기복을 빌고 있는 이 부조에서 소펭은 여행자에게 소원을 빌어보라고 권한다. 캄보디아 전 담당자였던 직원이 여기서 소원 빌고 결혼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로 나도 관세음보살상의 영험함을 보탠다.

씨엠립의 앙코르 유적지는 보존이 잘 되어 있고, 볼거리가 많지만 사람이 너무 많고 사원도 너무 많아서 이 사원이 저 사원 같고, 이 돌덩어리가 저 돌덩어리 같다고 농담삼아 투덜대던 여행자 한 분이 반띠아이츠마 사원에서 무릎을 탁 친다.


여행사가 왜 이렇게 먼 곳까지 우리를 끌고 오나 했더니, 이거 보여주려고 그랬구만? 정말 멋지네요!”



사원 탐방을 마치고, 사원 앞 공터에서 옛날 방식으로 횃불을 켜고 저녁식사를 한다. 마을 분들이 전통음악을 연주해 주시고, 여행자와 주민이 함께 어우러져 한바탕 놀고 나면 반띠아이츠마에서의 첫밤이 흘러간다. 


어느때보다 여유롭게 사원 탐방을 마치고 사원 입구 쪽으로 나가면 야외에 저녁상이 차려져 있다. 옛날 방식으로 횃불을 밝혀 조명을 대신하고, 땅바닥에 돗자리를 깔아 식탁을 대신한다. 만든 음식을 경운기에 실어온 마을 주민분들이 음식을 날라주신다. 어스름한 하늘과 반띠아이츠마 사원의 실루엣을 배경으로 시원한 저녁 바람을 맞으며 밥을 먹다보면 전통악기를 연주하는 마을 주민팀이 배경음악을 깔아주신다. 이분들은 마을의 행사나 결혼식이 있을 때 음악을 연주하는 분들로 여행자들을 위해서도 기꺼이 걸음해 주신다. 우리나라 가야금처럼 눕혀 놓고 줄을 튕기는 악기인 타케는 악어 모양을 본따 나무로 만든 현악기이다. 해금과 비슷하게 생긴 뜨로와 북 등이 어우러져 애잔하기도 묘하게 신나기도 한 음악이 완성된다. 기분 좋은 여행자는 앙코르 맥주를 한 상자 시원하게 쏜다. 어른들은 어설프게 캄보디아 춤을 배워 한 방향으로 돌며 떼춤을 추고, 아이들은 여름밤을 가르는 반딧불이를 좇는다. 이렇게 놀아본 게 언제였을까? 아이 뿐만 아니라 어른에게도 반띠아이츠마의 밤은 속에 감춰둔 아이 본능을 깨우는 것 같다. 마을 주민들도 별 일 없이 평화로운 마을에서 놀고 마실 구실이 생겨 여행자의 어설픈 춤에 웃으며, 함께 추자는 권유에 줄행랑을 치며 웃느라 바쁘다.


캄보디아 전통가옥에는 유리창문이 없다. 대부분 나무로만 만들어져 있고, 벽이 얇아 바깥에서 들리는 닭 울음소리, 장사꾼 소리, 절에서 흘러나오는 스피커 소리가 아주 잘~ 들린다. 


흙길의 상태가 괜찮으면 마을 주민들에게 자전거를 빌려 12km 정도 떨어진 반띠아이톱 사원까지 갈 수 있다. 자전거의 상태는 기어와 쇼바 없는 보통의 자전거. 그래도 자전거의 속도로 마을을 둘러보는, 터덜터덜 달리는 재미가 있다! 



반띠아이츠마에서의 아침은 닭 울음소리와 마을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불교 경구로 시작된다. 전통가옥이 얇은 나무판자로 만드는지라 워낙 벽이 얇아 마치 창문 바로 바깥에 닭이 있는 듯 시끄럽다. 1층으로 내려가 커다란 항아리에 모아둔 빗물을 한 바가지 퍼서 세수를 한다. 여행자가 머무는 홈스테이에 수도꼭지나 수세식 화장실 같은 편의시설이 없는 건 아니지만, 굳이 수도꼭지를 틀어야 할 이유가 딱히 없다. 항아리에서 물을 퍼 세수를 하는 게 더 자연스럽고 더 재미있다.

마을 식당에 모여 아침식사를 마치고 시장 나들이에 나선다. 반띠아이츠마 마을 시장에는 태국에서 흘러온 기성품들도 많지만 곳곳에 군것질을 할 만한 직접 만든 과자와 열대 과일 가판대도 있어 여행자의 지갑이 쉬이 열린다. 자신있게 흥정도 하고 처음 보는 과일의 이름도 물어보며 시장 산책을 마치고 나면 여행자의 양손에 과일이며 간식들이 한아름 들려있다. 

마을에서 약 12km 떨어진 곳에 있는 반띠아이 톱 사원에서 점심식사를 마치면 다시 씨엠립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톱 사원까지는 길이 평평하면 마을 주민들에게 자전거를 빌려 타고 가기도 하고, 자전거가 충분치 않거나 길이 안 좋을 땐 경운기를 빌려 가기도 한다. 광대하게 펼쳐진 논밭과 저수지를 바라보며 그 안에 활짝 핀 연꽃에 마음을 듬뿍 주기도 하고 털털 거리는 경운기에 엉덩이 아프다고 말은 하면서도 웃는 얼굴들이 시원하다.


*반띠아이츠마 마을여행 경비의 가격과 마을 적립금 예시 (출처 : 반띠아이츠마 마을 홈페이지)

항목

가격

마을 적립금

점심/저녁식사

1인당 $4

$0.5

홈스테이

1, 1박에 $7

$3

마을 가이드

1일에 $10

$1

반띠아이츠마 마을에서 여행자가 지불하는 경비의 일부분은 마을 적립금으로 돌아간다. 마을 적립금은 마을에서 필요한 시설을 만들거나 마을 여행 인프라를 보수하는 데 사용된다. 



1년에 기껏해야 일주일의 휴가를 사용하는 한국인에게 왕복 8시간의 이동 시간을 감수하며 불편한 시골집에서 하루를 잔다는 것은 대단한 결심이 아닐 수 없다. 아니, 동남아를 5박 7일동안 여행한다는 것부터가 대단한 결심이다. 진행하는 우리도 매번 이게 정말 재미있을까?’하는 의문을 계속 던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띠아이츠마 마을 여행을 계속했던 이유는 분명했다. 이미 경험한 여행자들이 앙코르와트 유적지보다 반띠아이츠마 마을에서의 1박 2일이 더 좋았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여유롭게 캄보디아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는 말을 끊임없이 했고, 여행자의 경비가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는지 명확히 보이는 돈의 흐름이 결국 마을 여행이 추구하는 방향을 여실히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바로, '주민들이 되도록이면 마을을 떠나지 않고 가치 있는 것들을 지켜내며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겠다' 라는 것. 

여행자와 함께 마을을 방문하다보면 과연 이게 지역에 진정 좋은 프로그램일까?’ 라는 질문도 늘 하게 되기 마련이었다. 1 2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왔다가는 여행자들이 지역에 큰 도움이 될까, 여행자들의 경비중 일부를 적립해 마을에 기부한 큰 금액이 순기능으로만 작용할까 하는 고민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마을 그 자체로도 이미 지속가능한 공동체인데 오히려 외부로부터 흘러 들어오는 기부금이 공동체의 자립을 해하고 외부 의존도만 높이는 것이 아닐까 걱정했다. 아직 정답은 모르겠다. 앞서 말했듯이 반띠아이츠마에서 본격적으로 여행자 대상 서비스를 시작한 것이 채 10년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조직을 구성하고 프로그램을 만드는 등 처음 시작은 외국 NGO의 도움을 필요로 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껏 주도적으로 CBT를 이끌어 온 주체는 외부인이 아니라 주민이었다. 내가 우려한 일들이 현실이 되더라도 혹여나 공동체의 자립에 위협이 되는 일이 발생하게 되면 그것을 감지하는 능력도 주민들에게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여행자와 여행자를 데리고 마을로 가는 여행사 역시 소비자나 계약관계로써가 아니라 마을의 방향성을 함께 고민하는 친구의 역할을 맡게 되고, 친구의 마음으로 마을에 머물다가 오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도 반띠아이츠마 마을에 갈 때마다 '이런 게 친정의 기분일까? 고향의 기분일까?' 하는 생각이 매번 드는 것일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