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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이의 별거있나

데익짬, 담째익 #06 수상마을의 일상 속으로 (2) 톤레삽 보트투어

객관성을 왼손에 쥐고, 주관적인 오른손이 써내려간 여행기입니다. 

여행기획자로 캄보디아를 오고가며 했던 생각들, 만났던 사람들, 맞닥뜨린 경험들을 공유하고자 해요. 

'데익짬, 담째익'은 '한 숨 자고나서, 바나나 나무 심고 나서...'라는 캄보디아 말로 

유머러스하게 완곡하게 거절할 때, 또는 '여유를 가져~'라고도 말할 수 있는 표현입니다. ^-^


#06 수상마을의 일상 속으로(2) 톤레삽 보트투어 


씨엠립 시내에서 1시간 반이면 프렉또알 마을에 닿는다. (사진은 맵 시절 식초의 편집)


이른 아침. 호텔 앞에 오스모스Osmose 에서 나온 봉고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 앞에 선 생태 전문 가이드 쏘반이 환하게 인사를 한다. 쏘반이 입고 있는 녹색 티셔츠에는 Osmose라는 이름과 함께 오스모스의 상징인 황새 한마리가 그려져 있다. 오스모스는 톤레삽으로 알을 낳으러 돌아오는 철새를 보호하고 톤레삽 환경을 보존하며 수상마을 주민들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NGO이다. 이러한 방대한 목표를 친환경 여행(Eco-tourism) 프로그램을 통해 해결해 나가고 있다. 우리가 참가할 일정은 1 2일짜리 수상가옥 홈스테이 에코투어 프로그램으로 쪽배로 천천히 마을을 둘러보고 마을 식당에서 식사 하고 수공예 작업장에서 기념품을 직접 만들어보고 물 위에 떠 있는 수상가옥에서 방 한 켠을 내어준 지역주민들과 하룻밤을 지내는 일정이다.


씨엠립 시내에서 가깝고 그만큼 상업적으로 변한 총끄니 수상마을, 지주식 수상가옥과 보트식 수상가옥을 함께 볼 수 있지만 건기 때는 접근이 어려운 꼼퐁플룩 수상마을은 톤레삽 보트투어를 하는 여행자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곳이다. 두 마을은 시내와 가깝기 때문에 짧은 휴가 기간을 이용해 캄보디아 여행을 하는 많은 여행자들에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스모스가 여행자를 데리고 가는 수상마을은 씨엠립 시내에서 차로 30, 배로 갈아타고 1시간 30분을 더 들어가야 도착할 수 있는 프렉또알 수상마을이다. 한 번 다녀오는 데만 한나절이다. 거기다 철새 관찰 프로그램을 추가하면 하루가 꼬박 걸리고, 수상가옥 홈스테이를 하려면 1 2일을 머물러야 한다. 이쯤되면 금쪽같은 시간 쪼개서 떠나온 여행인데, 굳이 프렉또알 마을까지 가서 톤레삽을 봐야할까?’라는 질문에 부딪히게 된다. 꼬리에 꼬리를 문 생각은 왜 여행을, 왜 하필 그곳을 가려고 하나?’라는 근본적인 물음까지 가 닿는다.


프렉또알 수상마을에서 쪽배로 마을투어중. 쪽배는 집집마다 한 대 씩 다 갖고 있다. 


프렉또알은 조류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는 수상마을이다. 매년 9월부터 2월까지 멸종위기종인 따오기, 황새, 펠리컨을 포함한 200여종의 철새가 프렉또알로 모여든다. 단지 겨울 한 철을 나기 위해 오는 것 뿐 아니라 알을 낳고 부화시키기 위해 철새들은 이곳에 머무른다. 톤레삽의 풍요로운 자연환경은 철새들이 먹을 충분한 물고기와 둥지를 틀 나무들을 내어준다. 한 때 프렉또알 마을 주민들은 철새를 잡거나 알을 채집해 먹기도 하고 팔기도 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프렉또알이 2001년 캄보디아 정부에 의해 톤레삽 생태계 보호구역(TSBR)의 핵심 보호 지역으로 지정된 이후 이곳에서의 조류 수렵과 채집이 전면 금지되었고 오스모스 등의 NGO가 주축이 되어 시행한 주민 대상 환경교육으로 과거에 알을 채집하던 마을 주민들은 현재 철새를 지키는 파수꾼이자 안내원이 되어 여행자를 맞이하고 있다.


프렉또알에 가기 위해 배를 타야 하는 선착장까지 가는 길은 톤레삽 호수 인근이라 모두 농사지역이다. 자동차를 타고 30~40분 정도 시골길을 달리는 동안 가이드 쏘반은 톤레삽 인근에서 농사를 짓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오직 몇 대의 배만 정박해 있는 작은 선착장에 도착하면 모터 배로 옮겨 탄다. 시끄러운 모터 소리가 익숙해지는 것만큼 점차 물길의 폭이 넓어지는 것이 보인다. 한참을 달려 확 트인 호수에 다다르자 운전기사는 배의 엔진을 끈다. 그 때 찾아오는 고요란! 모터 소음이 갑자기 멎자 오히려 멍해진 귓가로 찰랑이는 호수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부레옥잠이 자기들끼리 잎을 스치는 소리만이 평화롭게 들릴 뿐이다. 쏘반이 아침 식사라며 작은 상자를 여행자에게 하나씩 나누어준다. 빵 두 개가 예쁘게 담겨 있는 상자는 톤레삽에 널린 부레옥잠 줄기를 말려서 꼬아 만든 것이다. 커피와 과일로 마무리된 든든한 아침식사를 호수 위에서 마치자, 쏘반이 그림 자료들을 펼치며 톤레삽의 생태에 대한 강의를 시작한다. 그림에는 평상시와 범람기 때 톤레삽 깊이의 변화부터 어떤 종류의 물고기가 호수에서 살고 있는지, 톤레삽의 생태와 먹이사슬 구조는 어떻게 되어 있는지, 멸종위기종인 새들이 찾아와서 알을 낳는 때는 언제인지에 대한 내용이 알기 쉽게 정리되어 있다. 다시 엔진을 켜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톤레삽 수평선을 향해 달리다 보면 멀리서 갑자기 집들이 한 둘 씩 보이기 시작한다. 목적지인 프렉또알 수상마을에 도착한 것이다.


마을 첫번재 건물인 식당+사무실+작업장 복합 건물. 바닥에 늘어놓은 것이 부레옥잠이다 


작업장에서 주민의 도움으로 나만의 기념품을 만들어 볼 수 있다. 오른쪽은 크메르어로 자기 이름을 쓴 작품. 


시내에 위치한 오스모스 사무실에 부레옥잠 공예품이 전시되어 있다


마을의 초입에 위치한 수상건물은 에코투어 사무실겸 마을 식당, 수공예 작업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로 마을에 머무르는 1 2일 동안 베이스캠프처럼 들락날락 하게 될 곳이다. 반띠아이츠마 마을처럼 이곳 식당에서도 마을 주민으로 구성된 요리팀이 여행자를 위해 식사를 마련해 주신다. 직접 잡은 물고기가 주요 재료이지만 뭍에서부터 가져온 과일이나 코카콜라, 스프라이트도 보인다. 쌩뚱맞은 콜라의 등장에 괜시리 여행자의 눈치를 살피다가 그냥 편하게 콜라 한 모금으로 더위를 식히기로 한다. 가끔 마을 식당에서 캄보디아 음식을 함께 만들어보는 쿠킹클래스를 하기도 한다. 주방은 좁고 시설은 충분치 않지만, 톤레삽 호수에 살랑 살랑 부는 바람 맞으며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는 것도 쏠쏠한 재미이다. 간혹 식당이 가볍게 출렁거려 이곳이 수상건물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바로 옆에는 부레옥잠 줄기를 말려 바구니나 돗자리, 작은 상자 등 물건을 만드는 작업장과 전시실이 있다. 초기에 이 작업장을 시작했을 때 벨기에와 인도네시아 등 외국에서 온 디자이너, 수공예 장인들의 도움을 받아서 여러 형태의 물건들을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원래 프렉또알 마을 여성들도 과거에는 부레옥잠을 말려서 해먹을 만들곤 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점점 공장에서 만드는 플라스틱 재질의 해먹이 값도 싸고 구입하기도 쉬워지면서 으레 그렇듯 직접 만드는 수공예 부레옥잠 해먹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 지금은 다시 부레옥잠으로 해먹을 만들어 판매용으로 전시해 두고 있지만, 집집마다 걸려 있는 해먹은 역시 저렴한 공장생산 해먹이다. 이곳에서 만드는 공예품은 꽤 유명해서 고급 호텔에서 로비나 객실에 깔아두는 부레옥잠 돗자리를 주문하기도 하고, 완성품을 시내에서 판매하기도 한다. 미리 신청하면 마을 주민들로부터 직접 부레옥잠을 사용한 물건 만들기를 배워볼 수 있다. 잔잔한 호수 위에 평화롭게 떠 있는 부레옥잠은 사실 수상마을의 골칫거리이다. 적당량 있으면 물고기들의 휴식처가 되고 좋은데, 빠른 번식력 덕에 수면을 덮어버릴 지경인데다 때때로 배 모터에 걸려들어가 고장이나 사고를 유발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현재는 마을 주민 30여명이(대부분은 여성이 가장 역할을 해야 하는 가정의 주부) 부레옥잠 공예품 프로젝트에 참여해 수입을 만들어내고 있으니 마을의 골칫거리 해결과 수익 창출, 친환경 공예품 생산이라는 여러 마리 토끼를 잡고 있는 셈이다. 


쪽배 저어주시는 주민분. 미안함에 또 호기심에 노를 저어보지만 이내 포기하고 만다. 어렵다. 


수상마을을 둘러볼 때는 모터 달린 큰 배가 아닌, 쪽배를 타고 둘러본다. 집집마다 자가용처럼 노젓는 쪽배가 있지만 항상 사용하는 것은 아니여서 여행자가 마을을 방문할 때 주민이 직접 쪽배를 저어주시는 것이다. 쪽배를 저어주시는 분들은 대부분 여성들로 어린아이를 대동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총끄니 수상마을에서처럼 여행자의 어깨를 주무르고 용돈을 받으라고 아이들을 데려오는 것은 아니고, 집에 혼자 두기 걱정이 되거나 아이에게 외국인 구경(?)을 시켜주려고 데리고 오시는 듯하다. 쪽배는 잔잔한 호수를 가로질러 수상 텃밭, 수상 악어우리, 수상 마을 공동 공간을 한바퀴 휘 돈다. 호기심 많은 여행자는 아예 노 젓는 주민을 뒤에 앉히고 직접 노를 저어본다. 하지만 쉽게 내맘대로 되지 않는 것이 노젓는 일, 허공에 웃음이 퍼진다. 시내부터 대동한 한국어 가이드는 쪽배에 길게 드러누어 뱃놀이를 즐긴다. 조류 보호 구역 중 일반인의 출입조차 허락되지 않는 곳은 전망대에 올라 먼 발치서 구경하는 것으로 쪽배 마을 투어가 마무리된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프렉또알 수상마을은 어느 쪽을 둘러봐도 끝없는 호수와 드문드문 자리한 수상가옥이 보일 뿐이다.


수상마을에도 밤은 찾아오고, 색다르지만 불편한 것도 사실인 수상가옥에서의 하룻밤이 시작된다. 뜨거운 물도 나오지 않고, 전기도 충분하지 않으며 매트리스마다 모기장이 있기는 하지만 마루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보면 조명 때문에 각종 벌레가 시도때도 없이 날아든다. 그래도 반들반들한 나무 마룻바닥에 앉아 주인 가족이 보여주는 화려한 결혼식 사진을 함께 보며 손짓 발짓으로 수다를 떨기도 하고, ‘여긴 주방, 여긴 새끼 악어들을 키우는 곳하며 집안 곳곳을 안내해 주시는 가족을 졸졸 따라다녀 보기도 한다. 그러다보면 쪽배에 간식이나 먹을거리들을 잔뜩 실은 이동식 슈퍼가 집 앞까지 모터를 탈탈거리며 다가오고 여행자는 기분에 양껏 과자를 골라본다. 밤이 깊으면 손전등을 몇번 깜박여서 멀리 지나가는 이동식 슈퍼를 부를 수도 있다. 프렉또알 마을은 오스모스가 진행하는 정수 프로젝트가 활성화 되어 있어서 정수된 물을 받아와 그 물로 요리하고 씻는다. 물론 정수된 물을 사용할 수 있음에도 샤워할 때는 호수 물을 그대로 사용하는 주민들도 있다. 사는 환경이 다르니 깨끗함에 대한 기준 역시 다를 수 있다. 이곳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동안 모든 벌레가 병균을 옮기는 건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흙이 더러운 것이 아닌 것처럼 모든 벌레도 해충이 아니라는 사실은 자연과 격리되어 있는 도시인에게 때때로 가벼운 충격으로 다가온다.


집에서 키우고 있던 새끼 악어. 뽕뽕 하는 소리를 낸다. 캄보디아에서는 악어를 키워서 태국으로 판매한다. 


집 앞까지 와주시는 이동식 슈퍼. 


프렉또알의 아침은 시끄러운 모터소리로 시작된다. 집집마다 자가용처럼 한 대 씩 갖고 있는 모터배가 분주히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다. 어업이 활발한 때면 새벽 2-3시부터 모터소리가 시끄럽다. 이토록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에 모터 소리만 없었으면하는 마음이 간절하지만 프렉또알은 민속촌이 아닌, 사람들이 일상을 사는 곳이지 하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쪽배도 여전히 사용하고 있지만 모터배의 편리함과 기동성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이들 학교도 더 쉽게 데려다 줄 수 있고, 누가 아프기라도 하면 뭍으로 금세 달려갈 수 있게 해주는 게 모터배일 터다. 매일매일 모터 소리를 들어야 하는 주민들보다 일년에 몇 번 오는 게 고작인 내가 이 소리 때문에 더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아님이 분명하다. 마을 식당에서 마지막 식사를 하고 한 손에는 부레옥잠으로 만든 가방과 작은 매트를 들고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눈다. 여행자는 다시 자동차 소음과 차선을 넘나드는 툭툭과 오토바이의 혼란 속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프렉또알 마을 가는 방법 : 미어 쯔레이 혹은 총끄니 선착장에서 배를 빌려타고 프렉또알로 갈 수는 있지만, 아래 두 단체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을 추천. 마을 식당이나 쪽배 프로그램, 홈스테이가 관광지처럼 늘 여행자를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

a. 오스모스 : 반나절부터 2일짜리까지 4개의 주요 프로그램 운영중.

 www.osmosetonlesap.net

b. 샘비에스나 : 탐조(bird watching) 프로그램에 좀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만 수상가옥 홈스테이도 가능.

 www.samveasn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