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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이의 별거있나

데익짬, 담째익 #04 펍 스트리트, You are What You EAT

객관성을 왼손에 쥐고, 주관적인 오른손이 써내려간 여행기입니다. 

여행기획자로 캄보디아를 오고가며 했던 생각들, 만났던 사람들, 맞닥뜨린 경험들을 공유하고자 해요. 

'데익짬, 담째익'은 '한 숨 자고나서, 바나나 나무 심고 나서...'라는 캄보디아 말로 

유머러스하게 완곡하게 거절할 때, 또는 '여유를 가져~'라고도 말할 수 있는 표현입니다. ^-^


#04. 펍 스트리트, You are What You EAT 


씨엠립 펍 스트리트. 사진 출처 : 구글 


여행자들의 거리라고 불리는 씨엠립의 펍스트리트는 배낭여행자들의 메카, 방콕의 카오산 거리와 닮았다. 식당과 술집, 길거리 간식과 기념품 가게들이 길을 따라 죽 늘어서 있고 전세계에서 몰려온 여행자들은 싼 물가와 흥겨운 분위기에 밤을 잊는다. 빨간 네온 간판으로 불을 밝힌 ‘Pub Streets’ 간판 아래 노천에서 여행자들은 긴 의자에 누워 음료수를 마시며 발마사지를 받거나 1달러를 더 깎기 위해 흥정을 시작한다. 5달러짜리 팔랑팔랑한 몸뻬바지와 ‘I Cambodia(캄보디아 사랑해요)’‘No TukTuk today(오늘은 툭툭 안 타요)’ 등이 적힌 3달러짜리 티셔츠, 팔에 주렁주렁 달린 팔찌가 여행자의 유니폼이다.  이들을 유혹하는 또다른 펍스트리트의 주인공은 툭툭 기사들이다.


한국인? 아니면, 일본인?”

앙코르와트 가봤니? 내일 갈래? 싸게 해줄게~”


끊임없이 호객하는 툭툭 기사들을 외면하며 걷다보면 펍스트리트에서 가장 잘나간다는 두 개의 클럽이 마주보고 누가누가 더 크게 음악을 틀 수 있나를 경쟁하는 듯 스피커를 울려댄다.  이 거리가 조용했던 적은 전 국왕인 시하누크왕의 서거로 캄보디아 전 지역에서 춤과 음악 공연이 금지되었던 2012 10월 뿐이었다.  

펍 스트리트는 외국인 여행자의 편의를 위한 구역이다. 크메르어(캄보디아어)를 못한다고 물건을 사거나 위치를 물어보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 먹거리도 캄보디아 음식은 물론, 베트남식, 태국식, 서양식 등 다양하게 맛볼 수 있다. 여행자들이 증가하면서 자연스레 땅값이 오르고 식당 주인들도 이미 과반수 이상이 중국인, 베트남인을 포함한 외국인이다. 직접 기른 유기농 채소들을 재료로 사용해 캄보디아 전통 음식과 디저트를 만드는 식당인 앙코르팜 레스토랑Angkor Palm restaurants’의 번Bun 사장님에 따르면, 펍스트리트에 있는 식당 중에 앙코르팜과 크메르 키친Khmer Kitchen’ 두 곳은 캄보디아 사람이 운영하는게 분명하지만 다른 식당은 거의 아닌 것 같다고 말할 정도이다. 물론 캄보디아인 운영자만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내거나 좋은 경영을 한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분명 있다. 아마도 식당 운영자들이 토박이에서 외지인으로 점점 변해가는 시간 동안, 서울의 인사동, 북촌 등지에서도 쉽게 볼 수 있었던 과정이 전개되지 않았을까 싶은 것이 그 지점이다.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인해 치솟는 월세를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외곽으로 내몰리고, 높은 세를 낼 의향과 경제력이 있는 사람들이 몰려오는 일들이 벌어졌겠지 싶어서 말이다. 그 와중에 이 지역에서만 볼 수 있었던 독특한 밥집이나 물건, 상가 문화, 그 안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찾던 여행자는 점점 사라지고, 아시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공장에서 만들어진 물건들을 판매하는 가게와 소비자들만이 그 자리에 남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아쉬움. 실제로 앙코르팜의 번 사장님도 건물 주인이 터무니없이 가게세를 올려달라는 바람에 다른 장소를 알아봐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 처음 출장 갔을 때 발견했던 다양한 종류의 캄보디아식 국수를 팔던 깔끔한 인테리어의 식당, <Noodles>가 어느날 가보니 각종 양주와 생맥주를 파는 영국식 펍으로 변해 있었다. 세계 곳곳에서 여행자와 자본이 흘러들어오고 있어,  앞으로도 계속 아쉬워할 일만 생기는 건 아닐지 걱정이다.


살라바이 입구. 사진 출처 : 구글 


이런 와중에 10년 넘게 제 자리를 지키며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수익을 캄보디아 청소년들을 위한 교육 사업에 환원하는 레스토랑이 있다.  펍스트리트의 번잡한 골목을 잠시 벗어나 도보로 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살라바이 Sala Bai 레스토랑이 바로 그곳이다. 남보라빛의 현수막 간판에는 ‘Sala Bai Hotel & Restaurant School(살라바이 호텔, 레스토랑 학교)’라고 적혀 있고, 벽 없이 오픈된 1층 공간에는 10개 남짓의 테이블에 기본 세팅이 깔끔하게 차려져 있다.  이름이 말하는 것처럼 이곳은 레스토랑이자 숙박시설이며 교육기관이다. 프랑스 NGO ‘Agir Pour le Combodge (직역. 캄보디아를 위한 행동)'가 운영하고 있는 살라바이는 한국의 고등학교 과정까지를 포함하는 의무교육은 마쳤지만 영어나 직업교육을 받지 못해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청소년을 선발해 관광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교육을 제공하고 구직까지 알선해주는 활동을 하고 있다. 앙코르 유적지의 관문이어서 대표적인 관광도시인 씨엠립에서는 관광용 영어를 할 줄 알아야 툭툭 기사든, 호텔 직원이든, 레스토랑이나 카페에서 웨이터를 하든 직업을 구할 수 있다. 하지만 공교육에서는 제대로된 영어 수업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중산층 가정에서는 아이들을 영어 학원이나 사립학교에 보내 외국어를 배울 수 있게 하지만, 대부분의 캄보디아 가정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살라바이는 1년에 100명의 학생을 선발한다. 캄보디아 전역에 라디오, 신문 광고를 내고 요리사나 호텔 직원, 레스토랑 직원이 되고 싶어하는 17~23세 사이의 학생들을 모집한다. 지원서를 받은 후엔 기회가 보다 골고루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 담당자가 직접 발로 뛰며 조사를 시작한다. 각 지원자들의 가정을 방문해 학생의 의지와 가정 형편을 최대한 파악해 정말 필요한 지원이 되도록이면 가장 절실한 학생에게 돌아가도록 조사하는 것이다.  2-3개월의 방문 및 선발 과정을 거쳐 최종 발탁된 100명의 학생들은 1년 동안 교육비와 숙식비, 유니폼, 자전거, 의료보험의 혜택을 제공받으며 현장 인턴쉽을 포함한 집중 교육을 받게 된다. 중간에 경제적인 이유로 학업을 중단하는 학생이 생기지 않도록 모든 발생비용은 NGO에서 지원한다. 살라바이의 마케팅 매니저 엠마누엘 씨에 따르면, 2012년 당시  700여 명의 청소년이 지원서를 냈고, 455명이 서류심사 통과, 담당직원들이 3개월동안 직접 각 가정을 방문하는 과정을 거쳐 100명의 학생이 최종 선발되었다. 이 중 42명의 학생들이 고아거나 실질적으로 부모님이나 친척들에게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청소년이었다. 또 전체 학생 중 2/3는 여학생을 우선 선발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엠마누엘 씨는 교육에서 어떤 부분에 가장 많은 노력을 들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한다.


여기 오는 학생들은 오랜시간동안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 많습니다. 읽는 것, 쓰는 것 등의 학업 행위에서 한동안 멀어져 있었죠. 이 학생들이 다시 무언가를 읽고, 쓰게 하는 것, 공부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지게 만드는 것, 익숙한 일이 되도록 만드는 과정이 굉장히 중요하고 그래서 시간을 많이 들이는 부분입니다.


살라바이 점심 셋트메뉴 중


살라바이에서 점심식사 한 끼는 1인당 10~12 달러 선이다. 현지인들이 애용하는 음식점에서 기본 쌀국수는 1달러 선, 여행자들이 가는 곳에서도 3~4달러를 지불하면 보통의 식사를 할 수 있는 캄보디아에서 살라바이의 음식비는 비싸다. 그렇다고 음식값이 터무니없이 비싼 건 아니다. 신선하고 좋은 재료를 사용해 전문 요리사가 학생들과 함께 만든 음식에 충분히 지불할 수 있는 정도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내 음식값에는 학생들의 의료보험비, 자전거, , 교육비, 숙박비가 포함되어 있다.

살라바이의 홈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다.

점심 한 끼는 학생 한 명의 하루 교육비입니다

‘1박의 숙박비는 학생 한 명의 이틀 교육비입니다

살라바이에서 한 끼의 식사를 한다는 것, 하루의 숙박을 한다는 것은 변화를 만들어 내는 일입니다

 

살라바이는 까다로운 곳이다. 12명 이상의 예약을 받지 않으며, 일주일 전에 예약을 하려 해도 이미 예약이 꽉찬 경우가 허다하다. 교육기관이기 때문에 수업시간이 모두 끝나는 저녁 시간의 식사는 제공되지 않고 아침과 점심식사만 가능하다(이런 규칙들은 교육과정에 따라 때때로 변한다. 홈페이지를 참고하거나 전화를 걸어 확인해 보는 것이 좋다). 1년중 약 3개월은 문을 닫는다. 이 시기는 교육받을 학생들을 선발한 직후 3개월이다. 새로운 학생이 들어오면 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어느 정도 교육이 이루어지고 일이 익숙해질 무렵까지는 식당도 게스트하우스도 운영하지 않는다는 것이 방침이다. 살라바이는 그곳을 찾는 여행객들에게 음식과 서비스의 질에 대한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우리는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으니 그에 마땅한 돈을 지불하세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좋은 질의 음식과 서비스에 더해 잠재되어 있는 가치에 지불하라고 말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질 좋은 직업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또 그곳을 찾는 여행자들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살라바이는 끊임없이 전문인력을 선생님으로 모시고 학생들을 교육한다.

엠마누엘 씨는 지금껏 모든 학생들이 씨엠립의 관광 업계에 취직을 했고, 호텔과 레스토랑으로부터 좋은 피드백을 받고 있으며, 이제는 살라바이 출신 선배들이 후배들을 본인이 일하고 있는 곳으로 추천해서 데려가는 일들도 생겨나고 있다고 자랑스러워 한다.


가족 중심적인 캄보디아 사회에서 한 학생이 직업을 갖는다는 것은 큰 의미예요

100명의 청소년의 삶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가족까지 400~500명의 사람들이 다른 삶을 꿈 꿔 볼 수 있게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이죠.”


교육중인 학생들 모습. 사진출처 : 살라바이 홈페이지


실제로 모든 졸업생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대체적으로 살라바이 출신 학생들은 평균보다 높은 월급을 받는 경우가 많다. 출장 차 씨엠립에서 한두달 머무를 무렵, 시내의 단골 카페에서 일하던 한 청년도 살라바이 출신이었는데, 카페에서 일하며 번 돈으로 호텔 서비스 과정 대학에 진학하고 싶다고 종종 이야기했었다. 몇 달 후에 다시 가보니 카페를 그만두고 없었는데, 아마도 대학에 갔을 거라 짐작했다. 돈을 벌어 학업을 이어갈 수 있다는 꿈을 꾸게 한 것도 살라바이에서의 경험이 있기 때문 아닐까 싶었다.

물가 싼 맛에 다양한 열대 과일을 마음껏 맛보고, 1~2천원이면 카페에 편안하게 앉아 생과일 주스도 마음껏 마실 수 있고, 쇼핑하는 재미가 쏠쏠한 씨엠립으로 여행을 갔다고 상상해보자. 당신은 살라바이에 갈 것인가? 보통 식당에서는 5달러면 시원한 음료수를 포함해 한 끼 식사를 양껏 할 수 있는데, 그 두 배의 가격을 내고 살라바이에서 식사 한 끼를 즐겁게 할 수 있겠는가

살라바이에서 식사를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가 나쁜 여행자가 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알면서도 모른척 했다고 괜한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다. 다만, 씨엠립으로 여행을 간다면 살라바이에 가서 점심식사를 한 끼 먹어볼 것을 권한다. 서빙하는 학생들의 수줍음이나 긴장한 모습, 주방쪽으로 난 문으로 슬쩍 슬쩍 보이는 학생들의 분주한 모습을 지켜보다가 예쁘게 세팅되어 나오는 음식을 먹으며 10년 넘게 학생들과 함께 변화를 만들어나가고 있는 살라바이의 이야기를 한 입 꿀꺽 삼켜보자. 펍 스트리트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평화롭고 마음 따뜻한, 게다가 맛있는 한 끼의 행복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살라바이 위치가 변경되었다. 펍스트리트에서 씨엠립 강 건너편으로 건너간 후 남쪽으로 약 2km 떨어진 곳에 위치. 구글맵 아래 링크 참고. 

http://bit.ly/1XWsojn


+살라바이 홈페이지 

http://www.salabai.com/html/index.php?p_lang=en


+물론 사람의 입맛은 제각각..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맛이 고수 향이다. 주문할 때 "꼼(으)따 찌" 혹은 "노(N0) 찌" 라고 말하면 고수를 빼줄(지도..)것이다. 


+살라바이 같은 청소년 트레이닝 레스토랑이 씨엠립에 몇 군데 더 있다. 그 중 추천할 만한 곳은 아래.

(1) 헤이븐 Haven : 쏙싼Soksan 스트리트 위치, 펍 스트리트에서 도보 3. 스위스 NGO에서 운영. 고아원을 떠나야 하는 성인 나이에 다다른 학생들을 우선 지원한다. 색다른 퓨전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전식부터 본식, 후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셋트메뉴가 4가지 다른 종류로 준비되어 있다.

http://www.havencambodia.com/en/welcome/

 

(2) 마룸 Marum : 씨엠립 강변 위치, 펍 스트리트에서 도보 15. 툭툭을 타는 것이 좋다. NGO 프렌즈 인터내셔널 산하의 트레이닝 레스토랑 연합 소속. 캄보디아 전통 음식을 현대 입맛에 맞게 시도한 메뉴들이 있다. 1층에는 재활용 재료로 만든 기념품들(수익이 생산자에게 공정하게 분배되는 공정무역 시스템으로 운영)을 구매할 수 있는 작은 숍도 있다.

http://tree-alliance.org/our-restaurants/marum.asp?mm=or&sm=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