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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의 콧노래

인도네시아 #3: '지상낙원'이된 발리에 대하여

'여행'은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매력적인 단어가 아닐까 생각된다. 

여행과 관련된 일을 처음엔 다양한 나라와 

도시를 다닐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하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스스로 어떤 여행자가 되면 좋을지 고민 하게 되었다. 

여행자로써 또는 기획자였던 나의 여행을 공유하고, 길위에서의 고민에 대해 같이 이야기 하고 싶다.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친숙한곳 발리. 

자동차 크락션과 익숙한 매연, 

거리 곳곳에 그날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한 정성스런 차낭과 함께 신께드리는 기도로 아침이 시작된다. 


약 3백만명이 살고 있으며, 제주도의 3배쯤 되는 면적을 가지고 있다.

'신들의 섬' , '지상 낙원', '축복의땅', '예술과 종교의섬' 등등 

한번쯤은 들어 보았을 법한 수식어가 가득한 여행자들의 섬이다.



왜 이곳은 여행자들에게 오랜시간 사랑을 받아온 것일까?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파도를 가르는 서퍼들, 

마음을 다스리는 요가, 

독특한 문화 예술, 

2만여개가 넘는 힌두교 사원. 

소소한 일상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특별한것들을 여행자들은 느끼는 것일까.


  바나나잎으로 만든 바구니속 꽃,찹쌀등등을 넣어 만든 '차낭'


자연과 예술이 혼재된 발리만의 문화. 

그것은 사실 식민지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많은 학자들이 말해오고 있다. 

1597년 발리에 도착한 네덜란드 원정대는 이슬람권과의 종교전쟁으로 지쳐있었고, 

상대적으로 호의적인 힌두문명권에 호감을 느꼈다고 한다. 


우호적인 무역 상대이자 이슬람권에 대항하기 위한 동맹으로 처음엔 시작 하였으나, 

이후 식민지 문화정치 '지상낙원'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발리섬에 관광개발 정책을 펴며 발리는 '지상낙원'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그리고 점차 영화와 여행잡지를 통해 발리는 서구인들에게 강렬한 이국적 문화와 이미지를 남기며, 

휴양지로 소개되어 알려지게 된것이라 한다. 


언제나처럼 식민주의자들이 지배편의를 위해 정치보다는 

음악, 회화, 조각등 예술과 종교, 의례, 축제등에 관심이 많은 종족으로서 발리를 포장하였고, 

이것은 오랜 시간동안 발리의 힌두교와 맞물려 발리니스의 정체성과 함께 종교이자 삶이 되어 독특한 문화가 되어 버렸다.

       

인구 90%가 무슬림인 인도네시아에서 

유일하게 다른 종교 힌두교가 대다수인 발리는

이처럼 다른 문화와 종교를 가지고 있는 특성 때문에 인도네시아 같지 않은 섬이라 한다. 

그래서 발리섬을 떠올릴때 흔히 사람들이 인도네시아와 함께 연결시키지 못하기도 하는것 같다.


  여행자들에게 가장 유명한 해상사원 울루와뚜 사원&절벽


발리의 힌두문화는 13세기에서 16세기 자바섬에서 황금기를 꽃피웠던 마자빠힛 힌두왕국에서부터 시작한다. 

마자빠힛 왕국이 이슬람 세력에 몰락하면서 성직자와 귀족 그리고 예술가들이 발리섬으로 이동하여 정착하게 되었으며, 그 이후로도 외세 침략으로 부터 발리섬을 지키기 위해 꽤 오랜시간 힘겹게 싸워왔다. 


자연스럽게 외세로부터의 방어를 신께 의지하였으며, 

섬의 아름다운곳에 해상사원을 지어 섬의 평화와 안전을 간절히 기도하였다. 

그것이 지금까지도 현지인들에게는 의식을 진행하는 사원으로, 

여행자에게는 경치가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한 울루와뚜 사원과 따나롯 사원이다. 


발리의 힌두교는 인도의 힌두교와 다르게 제물을 바치는 행위나 

마을과 사원의 축제의식을 더 중요하게 여기며, 

이것이 마을 단위의 공동체와 혈연집단으로 이어졌다.


인도네시아는 다원사회(다종족,다종교,다인종)로 각 지역마다 크고 작은 분쟁이 많은 곳이다. 

 갈등의 근원을 사라(SARA)라고 말하며, 

인도네시아어로 Suku(종족), Agama(종교), Ras(인종) 그리고Antargolongan(집단) 4가지를 꼽는다. 


발리는 힌두문화 특성상 외지인은 융합이 힘든 곳으로 90년대 이후부터 관광산업이 활발해져 외지인들의 유입이 많아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이유로 발리는 인도네시아 갈등의 근원 사라(SARA)로 인한 표면적 갈등과 분쟁이 일어나지 않은 대표적인 곳이였다.


그러던중 평화로운 발리에  2002년과 2005년 무슬림에 의한 폭탄테러가 연이어 일어나면서, 

대부분 관광산업에 의존하였던 사람들은 급격히 줄어든 여행자수로 인해 경제적으로 큰타격을 입었고, 

외지인에 대한 경계와 통제가 그로인해 시작 되었다고 한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발리니스는 폭탄테러의 원인을 서로다른 이념의 갈등으로 일어난 테러가 아닌, 

무분별한 개발과 자연훼손으로 인한 신의 경고라고 해석을 하며 여러가지 대책을 세우게 된다. 

그리고 다방면으로 발리 전통과 문화를 회복하는 문화부흥운동으로 되었다고 한다.  



그때쯤 발리는 거리를 가득채우는 오토바이와 자동차들, 

건너 건너마다 생겨나는 높고 낮은 호텔들, 

넘쳐나는 쓰레기들 등등... 

관광산업으로 경제성장의 최고점을 달리고 있었고, 섬은 소리 없이 오래 전부터 시름 시름 앓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한쪽에서는 무분별한 개발과 여행시장의 폐해 매스투어리즘(mass tourism)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며, 대안여행을 고민하는 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조상이 살던 땅에서 발리전통과 자연을 그대로 지키며 사는 마을 주민과 여행자들이 만나는 여행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개인의 취향: 누구나 다 아는 '먹고,기도하고, 사랑하라'... 발리에 가면 이런 사랑을 할수있을꺼란 착각이 마구 샘솟는다.

+ 참조자료: 천가지 이야기가 있는 나라 인도네시아(임진숙) , 논문-낙원의 폭력(조윤미)

+ 본 블로그 사진은 핀터레스트 사진을 사용하였으며, 문제시 삭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