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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버리의 여행잡담

<쉬어가는 코너> 혼자 하는 여행 vs 둘이 하는 여행 #1


<차버리의 여행잡담>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하게된 20대 초반 이후, 

여행은 꿈, 노동, 삶 그 자체로.. 다양한 모습으로 형태를 바꾸어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획자와 여행자로서의 관점을 제멋대로 넘나들며

여행 중 '다름'을 목격하고, 우연히 만난 여행인연들과 부대끼며 떠올랐던 이런저런 생각들을 남기려 한다.



<글쓴이가 쉬고싶어 쉬어가는 코너> 

혼자 하는 여행 vs 둘이 하는 여행 #1 



"여행을 계획할 때 어디로 갈 것인가 만큼 중요한 고려요소가 하나 있다.

누구와 여행할 것인가? 혼자 떠날 것인가, 둘이 떠날 것인가?"

 

햇빛산책. 스페인 말라가 ⓒ 차버리


혼자 하는 여행은 즉흥적일 때가 많다.

그만큼 여행을 결정할 때 나의 상황(주머니실력, 연차의 실현가능성 등)만 고려하면 되기 때문이다.

특히 멀리 떠나는 여행이 어려웠던 시절은 다 지나갔다. 가까운 제주도, 일본, 중국, 동남아 지역까지는 과거에 비해 쉽게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저비용항공사들이 많이 생겨나면서부터 취항지도 다양해지고 가격도 많이 저렴해졌으며 땡처리 항공권이나, 유류할증료 및 세금만 지불하면 되는 공짜티켓 등의 특가 이벤트는 이제 흔한 일이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게 아니라, 완전히 그 반대의 상황이다. 항공사들이 경쟁적으로 내놓는 저렴한 티켓의 파도 속에서 여행의 유혹을 이겨내기란 쉽지 않다착한 가격의 티켓을 잡기 위해서는 짧은 순간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 미리 누군가와 작정을 해놓지 않은 이상 대부분 나홀로 여행이 된다. (싱글의 경우)

 

하지만 홀로 떠나기를 두려워하는 이들도 꽤 많다. 이유는 제 각각이다.

우선, 일상생활에서도 무엇이든 혼자서는 절대 안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되려 왜 여행을 혼자 가냐는 식의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대학시절 친구 중 배가 아무리 고파도 같이 먹을 사람 없이는 절대로 밥을 먹지 않는 녀석이 있었다. 혼자 먹을 때는 메뉴선택도 자유롭고, 오히려 에 집중할 수 있어 더 맛있게 먹었던 나와는 달리, 그 친구에게는 무엇을 먹는지 보다는 누군가와 함께식사를 즐긴다는 부분이 더 중요했다. 물론 주변의 시선이 신경 쓰이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아무튼 이 차이를 여행에도 대입할 수 있을 듯 하다. 자유와 집중이 나홀로여행자가 중요시하는 바일 것이다. ‘같이여행자는 여행을 통해 친구나 가족, 애인과 추억을 쌓는 것을 제일로 칠 것이다.

 

나의 나홀로여행을 돌이켜보면 즐거운 추억보다는 일상생활에서는 할 수 없었던 이런저런 생각들을 참 많이 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누군가의 친구도 가족도 아닌, 소속된 사회의 구성원에서 잠시 동안이나 벗어나 여행 중 마주치는 풍경, 장면, 사람들을 온전한 나만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이에 대해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이방인으로서의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이처럼 이방인의 신분은 해방과 고독을 동시에 선물한다. 장대비가 떨어지는 낯선 도시, 새벽에 아무도 없는 거리를 홀로 방황했던 장면과 그 때 품었던 감정들이 아직도 서늘하게 느껴진다. 홀로 여행할 적에 남겼던 사진이나 글들을 보면, 누군가와 동행했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느낌의 것들이더라.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의 오두막 ⓒ 차버리

 

혼자 하는 여행의 보너스는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이다. (, 보너스는 보너스일 뿐이다. 항상 보너스가 있다는 보장은 없다.) 낯선 자와의 조우는 흐뭇하게 미소 짓게 되는 좋은 추억이 될 수도 있고,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악몽으로 남을 수도 있다. 나의 경우, 도미토리룸에서 내가 자는 사이에 치약 빌린답시고 내 가방을 뒤지던(뒤지려고) 사소한 홍콩보이 사건 말고는 행복한 기억이 대부분이다. 필리핀 다바오에서 만나 낯선 나와 놀아준 두 청년, 언어는 통하지 않았지만 6-7시간이 넘는 거리를 차 태워주고 생일이라고 하니 코코아 사주고 문 열린 숙소를 같이 찾아줬던 크로아티아 아저씨. 오히려 여행을 통해 비로소 인간의 선한 부분을 목격하게 되는 것 같다.

 

한편, 해외를 혼자 여행하는 동양여자라는 포지션의 경우, 아이러니하게도 약점이 강점이 되고, 강점이 약점이 된다. 외국인이 보통 생각하는 이미지를 추측해보자면, ‘나이에 비해 어려 보인다’, ‘약해 보인다’, ‘위험하지 않다’, ‘신기하다정도 인데(물론 개인의 특성과 수많은 외부요인에 따라 다르다.) 이게 긍정적으로 작용하면 기본적으로 태도가 친절하고 친근하며, 어떤 경우에는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도와주려 하고, 이쪽에서 먼저 다가가도 거부하지 않는다. 그 반대의 경우, 남자들이 집적댄다. 종종 범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모로코에서 어떤 청년무리가 지나가며 자기 것을 입으로 해달라는 헛소리에, “니껀 니가 빨아로 대응한 적이 있다. 둘째 부인 삼겠다는 등의 헛소리도 종종 들었는데, 다른 인종의 여성들한테는 그런 식으로 대할 것 같지 않은 점이 재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런 못난 놈들은 전세계에 분포하고 사실 멀쩡한 사람들이 훨씬 많기 때문에 몇 번 안 좋은 꼴을 봤다고 해서 그 나라에 대한 편견을 가지는 것은 위험하다.)


크로아티아 뜨로기에 ⓒ 차버리

 

한편, 나홀로 여행을 나름 여러 번 해보니, 혼자 가서는 안 되는 여행지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휴양지.


휴양지도 휴양지 나름으로, 제주도 게스트하우스처럼 여행자들끼리 노는 문화가 있거나, 모두가 파티나 클러빙을 즐기러 가는 그런 곳이라면 문제 없다. , 서핑이나 스킨스쿠버 등의 특정 액티비티를 목적으로 가는 경우도 괜찮다. 그 안에서 얼마든지 사람을 만날 수 있으니. 그러나, 단순히 쉬러 가는 휴양지는 말리고 싶다. 세부, 보라카이, 푸켓, 다낭 이런 곳. 남들도 혼자 왔으면 괜찮은데, 나만 빼고 다들 누구랑 같이 왔다, 이런 곳에 혼자 가면 제일 아까운 게 숙박비다. 이런 휴양지에는 게스트하우스나 싱글룸이 많지 않다. 혼자 넓은 침대 쓴다고 좋아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호텔요금에는 2명의 조식 비용이 포함되어있지만, 혼자 두 번을 먹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 스스로 은둔자가 되어, 직장상사도 감히 방해할 수 없는 여유로운 휴식을 만끽하기 위해 떠났을 것이다. 이 때 책 한두 권쯤은 들고 간다. 점점 독서가 물리면 음악듣기, 영화감상, 사탕부수기 같은 중독성 게임 등 결국 평소 출퇴근길이나 집에서 했던 것들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아무리 재미있어도 2-3일까지다. 결국, 스마트폰의 와이파이를 연결해버리고 포털사이트를 훑어보다가 SNS에 혼자 보기는 아까운 바닷가와 음식 사진이나 혼자만의 꿀 같은 휴가를 보내고 있다는 글을 올리고, 사람들의 반응을 기다리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이런 저런 단점들이 있다고는 하나, 나는 계속해서 나홀로 여행을 떠날 것이다. 다음 행선지는 일본이 되지 않을까 싶다. 관광지가 아닌 주택가 골목들을 정처 없이 거닐면서 맘에 드는 곳이 나오면 오랫동안 머물면서 사진을 찍거나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 배가 꼬르륵거리면 말도 통하지 않는 동네식당에 들어가서 밥을 먹고.

이런 여행은 혼자만이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