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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버리의 여행잡담

<쉬어가는 코너> 혼자 하는 여행 vs 둘이 하는 여행 #2


<차버리의 여행잡담>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하게된 20대 초반 이후, 

여행은 꿈, 노동, 삶 그 자체로.. 다양한 모습으로 형태를 바꾸어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획자와 여행자로서의 관점을 제멋대로 넘나들며

여행 중 '다름'을 목격하고, 우연히 만난 여행인연들과 부대끼며 떠올랐던 이런저런 생각들을 남기려 한다.



<글쓴이가 쉬고싶어 쉬어가는 코너> 

혼자 하는 여행 vs 둘이 하는 여행 #2 



"여행을 계획할 때 어디로 갈 것인가 만큼 중요한 고려요소가 하나 있다.

누구와 여행할 것인가? 혼자 떠날 것인가, 둘이 떠날 것인가?"



자전거2. 담양 관방제림 ⓒ 차버리네 아빠


둘이 하는 여행, 항상 즐겁지 만은 않다. 아무리 맘이 잘 맞는 사람이라 해도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갈등이 일어날 확률이 높아진다. 유럽배낭여행 도중 친구와 감정이 상해 찢어져서 다녔다거나, 허니문에서 대판 싸우고 돌아왔다는 일화를 심심치 않게 들어봤을 것이다. 멀리 여행할수록, 낯선 환경일수록 긴장지수가 높아지기 때문에 사소한 일에서도 예민하게 대응할 수 있다. , 투자한 비용과 제한된 시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보니, 서로가 원하는 여행스타일이 서로 다를 경우 마찰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가장 흔한 대립 양상은 바로 뽕을 뽑자” vs “여유롭게 다니자”.

이 대결구도에서는 대부분 뽕을 뽑자파가 결국 승리한다. 후자는 이들에게 끌려 다니게 되어있다. 하고자 하는 욕구가 안 하려고 하는 욕구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몸이 아프지 않는 이상 이들의 끈질긴 요구와 열망을 무시하고 거절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여행 다녀와서 불만을 털어놓는 것은 항상 후자들의 몫이다. 전자들은 여행 중 하고 싶은 것을 다 이뤘다는 성취감에 흐뭇해 한다.

 

둘이 하는 여행은 미처 몰랐던 상대의 새로운 면모를 목격하는 시간이 된다. 항상 여럿이 함께 지내던 가족이나 친구들 중 특정한 한 명과 여행을 떠나보면 그 사람을 더 잘 알 수 있게 된다. (, 정나미가 확 떨어질 수도 있다는 부작용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가족여행을 자주 다니는 편이었지만, 부모님과 언니와 나, 항상 다 같이였었지단 한 명과 여행해본 적은 거의 없었다. 머리가 어느 정도 굵어지고 나서부터 각 구성원과 둘이 여행을 떠나보니, 세상에서 가장 익숙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던 이들이 꽤나 새롭게 느껴졌다. 집에서 있을 때는 알지 못했던 모습들에 놀라기도 하고, 그 동안은 몰랐던 마음 속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한편막내인 나는 선택권이 거의 없기 때문에 상대의 성향에 따라 여행의 성격이 결정된다.


가을. 담양 담양천 @ 차버리

 

얼마 전 아빠와 담양을 다녀왔다. 나의 경우에는 꼭 어딘가를 가자는 의도보다는 아빠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시간을 냈다. 사실 원래 목적지는 괴산이었는데, 서로 맞는 시간이 하루밖에 없었고, 두 번째 선택지였던 담양을 다녀오기에는 너무 멀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출발 전 날 아빠는 기어코 목적지를 괴산에서 담양으로 바꿨다. 여행지를 정하는 전화통화에서 담양 대나무 축제인가 뭔가가 열린다고 하는 것을 여러 번 말했을 때 알아차렸어야 했다. 아빠는 담양에 꼭 가야만 했다. 꼭두새벽부터 출발했고 나는 조수석에서 곯아 떨어졌다. 수도권에서 전국팔도 어디든 당일치기 하는 대형여행사의 국내 패키지 여행을 예감하면서.


담양에 도착한 우리는 소쇄원, 죽녹원, 관방제림, 메타세콰이어길, 창평 슬로시티, 내장산까지 쉴새 없이 찍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관방제림이 생각보다 굉장히 멋지길래, 메타세콰이어까지 담양천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가자고 아빠를 졸라 겨우 설득했다. 자전거 대여료가 비싸긴 했지만 그만큼의 가치가 있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하천로를 달려 나무가 우거진 산책로와 논길을 따라 달리니 기분이 상쾌했다. 막상 도착한 메타세콰이어길은 별 것 없었지만 자전거 타는 동안은 여행 중 거의 유일하게 숨쉴 수 있는 순간이었다


아, 천만다행으로 다음 목적지였던 강천산 구름다리는 아빠의 예상보다 많이 멀어 갈 수 없게 되었다.(아싸!)

이때다 싶어, 동료(나나)가 추천해준 창평 슬로시티를 대안으로 밀어 부쳤다마을을 산책하며 전에는 본 적 없었던 고즈넉한 고택마을의 분위기를 한창 즐기고 있는데, 아빠는 여기 땅값이 비싸겠다느니, 어마어마한 부자동네라느니, 풍경보다는 부동산시세에 더 관심이 가는 듯 했다. 어른들은 어느 동네를 가든 항상 부동산업자로 빙의한다. 여기까지 왔으니 차나 한잔 하자고 또다시 겨우 아빠를 설득해 마을에서 운영하는 듯한 한옥 마루에 앉아 차를 시켰다. 아빠는 그 뜨거운 차를 거의 원샷 하다시피 하더니 갈 길이 머니 빨리 가자고 재촉했다. 해가 지기전에 내장산 쪽 루트로 가서 단풍을 봐야한다나. 슬로시티라는 이름이 실로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초반에 언급했듯이, 이 "뽕을 뽑자"파는 도저히 이길 수 없다. 결국 아빠가 그토록 원했던 내장산 코스까지 다 밟은 후, 우리는 여행을 마쳤다.

 

비록 이 길었던 여행시간 중에서 내가 즐거웠던 순간은 자전거 탄 30분과 슬로시티에서의 30분 뿐이었지만, 사실 아빠가 언니와 내가 어릴 때부터 즐거운 가족여행을 위해 몇시간씩 차를 운전하고 고생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내 경험은 고충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 30년 동안 일만 했기에 가고 싶었지만 가보지 못했던 곳들을, 더 나이가 들어 몸이 불편해지기 전에 가고 싶어하는 아빠의 마음 또한 이해한다. 아빠와 여행을 떠나면 나는 분명 또 투덜거릴테지만, 아빠가 원한다면 계속해서 함께 다니고 싶다.



다음 화에 계속.